정의
조선시대 『월간문집』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이준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적중에 포위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전이 동생을 데리고 적진 탈출에 성공하여 형제가 무사할 수 있었다.
뒤에 이준이 감복하여 화공을 시켜 이 모습을 그리게 하고 「급난도(急難圖)」라 이름하니, 당시의 명공·거경들이 이 일을 노래로 읊었다고 한다.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 세마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인조 때에는 지례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상주의 옥성서원(玉城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