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운장(雲長), 호는 남곡(南谷). 이인상(李獜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통(李通)이다. 아버지는 예조참판 이경헌(李景憲)이며, 어머니는 윤응빙(尹應聘)의 딸이다.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57년 정언, 이듬해 지평·세자시강원사서를 거친 뒤 1659년 암행어사로 외방에 나갔다. 같은 해 찬집청낭청으로 임용되고 1662년(현종 3) 장령·집의·사간을 거쳐, 1664년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홍문관교리를 거쳐 1666년 홍문관수찬·응교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되었다. 같은해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668년 좌우부승지·승지로 승진하였다.
품성이 어질고 자신에 엄격하였으며 문재(文才)가 있었다. 관계로 나아간 뒤 교유를 삼갔고, 지방관으로 부임해서는 선정을 베풀었다. 누항에 거처하였을 때는 청빈한 선비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