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천일고무주식회사, 대한양회공업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내용
1933년 고무신 도매상을 시작하여 경기·황해·강원지방의 총대리점을 경영하였다. 1940년 경기도고무조합 이사로 재직하면서 주단포목 도매업도 겸업하였다. 1945년 광복 후 천일고무 이리공장에서 고무신 제조에 주력하였다. 1946년 김영준(金英俊)과 천일고무주식회사를 설립, 경영하였고, 이합상회(二合商會)를 개업하였다.
1949년 이합상회를 개풍상사(開豊商社)로 개칭하고 정식무역회사로 창립해 무역업에 종사하였다. 1953년 환도 후 호양산업주식회사(好洋産業株式會社)를 창립하여 제빙공장을 건설했고, 1955년 대한탄광주식회사를 설립, 경영하였다.
1956년 대한양회공업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사장에 취임하고 우리나라 사상 처음으로 국산시멘트공장인 대한양회 문경공장을 준공하였다. 1958년 3·1문화상제도를 만들었다.
1959년 서울은행을 창립하여, 대한양회공업이 서울은행 주식 74%를 인수하였다.
1962년 5·16군사정변 후 실업인 13명이 회동하여 경제재건촉진위원회를 발족, 회장에 취임하였다. 1963년 한국경제인연합회 제2대 회장에 피선되고, 같은 해 8월 3·1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1965년 공영화학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고, 1967년 전택보(全澤珤)·박용학(朴龍學) 등과 공동 출자하여 대한선박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70년 대한유화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4년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회장에 선임되었다. 1972년 해운업계에서의 공로로 대통령표창, 1978년 해운의 날에 국무총리표창(단체) 및 1980년 제4회 해운의 날에는 석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참고문헌
- 『삼일문화재단30년사』(삼일문화재단, 1989)
- 『송정이정림선생고희기념논총』(송정고희기념논총발간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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