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장(汝章), 호는 춘파(春坡). 강화 출신. 아버지는 좌랑 이상휴(李相休)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가 되고, 1714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 노론으로서 지평·정언에 이르렀다. 1721년(경종 1) 숙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경종이 무자질병(無子疾病)하므로 노론 4대신(李頤命·金昌集·李健命·趙泰采)과 함께 하루속히 왕세자를 정할 것을 발의하여, 왕제인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소론파의 유봉휘(柳鳳輝) 등은 시기상조론의 항소(抗疏)와 그 뒤 김일경(金一鏡) 등의 노론 4대신을 4흉(凶)으로 공격한 신임사화가 일어나 노론이 실각당하자, 영해에 유배되었다. 1725년(영조 1) 연잉군의 즉위로 풀려나온 뒤 승지·병조참판을 지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