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만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이조정랑, 좌부승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겸지(兼之)
수와(守窩)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38년(영조 14)
사망 연도
1810년(순조 10)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주요 관직
이조정랑|좌부승지|병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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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정랑, 좌부승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겸지(兼之), 호는 수와(守窩). 이종덕(李種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상경(李相璟)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태백(李泰白)이며, 어머니는 유일성(柳一星)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6년(영조 4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이 되었고, 1773년 이조정랑으로서 시관이 된 뒤 함경도의 과거를 관장하였다. 그 뒤 지평과 정언의 위치에서 여러 가지 상소를 하여 부당한 행위를 시정하고자 하였으니, 이를테면 이담(李潭)과 이진상(李鎭常)이 정권을 장악하고 세력가에 출입하면서 횡포를 부리는 것을 공격하는 한편 기강을 해치는 이평(李枰)을 파직하도록 건의하는 동시에 내시들이 공경대부와 같이 행동하려고 하는 무엄함을 탄핵하여 이를 바로 잡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 좌부승지와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1796년 영광군수로 있으면서 토지를 많이 장악하고 백성들에게 탐학하였다는 이유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한때 파직되었다가 1800년 다시 홍주목사가 되었다.

이 해,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자 안동김씨일파의 세도정치가 시행되므로 이를 논척하다가 광양현에 유배되었으며, 그뒤 1805년 대사령을 받아 석방되었으나 우의정 김관(金觀)에 의하여 다시 고창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그해 다시 풀려나와 승지가 되었다가 1810년 사임하고 낙향하여 은퇴하였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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