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릉참봉, 합천군수,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51년 대사간 때 권신 김상로(金尙魯) 형제를 신임사화 당시의 적당(賊黨)이라 탄핵했다가 대신을 능욕했다는 죄명으로 거제도로 귀양가게 되었으나, 계속 “신은 국가의 세록지신으로서 나라의 일이 날로 비뚤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그냥 있을 수 없어 죽음을 무릅쓰고 이 글을 올립니다.”라고 해 강경한 자세로 투철한 애국심을 보였다.
4개월 뒤 다시 정의현으로 옮겨졌다가 1753년 풀려난 뒤 예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해 학문 연구에만 전심하면서 강직하게 살아갔다. 오원(吳瑗) 등과 사귀는 한편 특히 윤심형(尹心衡)·이태중(李太重) 등과는 더욱 친밀히 지냈다.
평소 강직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져 사색당파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다. 죽은 뒤에 김상로 형제의 비위를 힘써 탄핵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조 때 이조판서 겸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저술활동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척재집(惕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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