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한 뒤 광복 때까지 경성역(京城驛) 조무(助務)로 일하면서 철도와 인연을 맺었다. 1947년부터 1951년까지 서울역장으로 근무하면서 광복 후 문란하였던 서울역의 시설복구와 행정체계 정립에 주력하여 혼란기의 철도행정을 수습하였다.
1954년 교통부장관에 임명되어 당시 교통행정의 총수로서 6·25 후의 마비된 교통행정, 특히 철도행정에 주력하여 폐허된 철도복구와 교량건설 등에 힘써 교통행정의 정상화를 기도하였다. 한편, 일본에서 전량 수입사용하던 기차의 각종 부품 국산화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특히 기차용 스프링의 국산화에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