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임하(林下). 이수징(李壽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찬(李澯)이고, 아버지는 참판 이만회(李萬恢)이며, 어머니는 정응상(鄭應尙)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서울에 살면서 1775년(영조 51) 왕이 숭정전 동월대(崇政殿東月臺)에 친림하여 실시하는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삼사(三司)의 요직을 거쳐, 1790년(정조 14) 김기성(金箕性)이 동지사로 청나라에 갈 때 서장관으로 수행하였고, 귀국한 뒤에는 왕에게 상세하게 보고하여 참판으로 발탁되었다.
1792년 왕에게 상소하여, 요즈음 세상 사람들이 의리를 몰라 충효는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이익만을 좇아 행동하고 있음을 개탄하였다.
같은해 유성한(柳星漢)의 죄를 탄핵한 상소문이 매우 조리에 맞고, 내용 또한 명문이었으므로 『승정원일기』 등에 실렸다. 1810년(순조 10) 호군(護軍)으로 있으면서 『오례통편(五禮通編)』을 저술하여 바친 공로로 호피 일령(一領)을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