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참모습을 관찰하여 참회를 얻는 것으로서, 관찰실상참회(觀察實相懺悔)라고도 한다. 신구의 삼업을 통해 기도나 예불로 하는 사참(事懺)과 대비된다. 대승불교의 유식사상가들은 유식(唯識)·유심(唯心) 등의 사상으로 과거와 현재에 지은 죄업들이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 것일 뿐이며, 마음 밖의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고 있다. 이 유식에다 반야사상(般若思想)을 더하여 자심(自心)이 본래 공적(空寂)한 것임을 알게 되면 모든 죄상 또한 공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유식과 반야의 입장에서 죄업의 실상을 관찰하여 죄를 멸하는 것을 이참이라고 한다. 이 이참은 무생참회(無生懺悔) 또는 관무생참회(觀無生懺悔)라고도 한다. 마음을 바로 하고 단정히 앉아 생멸(生滅)이 없는 실상을 관하여 죄의 본체가 무생임을 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에서 죄업의 본성은 무성(無性)이라 정의하고, 죄업이 본래 무성임을 체득하면 바로 참회를 이룬다고 하였다.
특히 그는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모든 죄장(罪障)이 망상으로부터 생기므로, 모든 상(相)을 파하고 진실관(眞實觀)에 들면 모든 죄가 일시에 다 없어진다.”고 하여 이참을 선종의 해탈방법인 돈오(頓悟)의 입장으로까지 승화시켰다.
또, 『대승육정참회』에서는 방일에 빠져 올바로 참회하지 않으면 더 큰 허물이 됨을 상기시키면서, 형식적인 생각으로만 참회하지 말고 깊이 부끄러워할 줄 알 것과 실상을 성의를 다해서 사유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원효는 생사라는 긴 꿈, 인생이라는 긴 꿈에서 깨어나는 여몽관(如夢觀)을 닦아서 여몽삼매(如夢三昧)를 이룰 때 올바른 이참이 이루어지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