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국이(國耳), 호는 극암(克庵). 이사흠(李士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순(李淳)이고, 아버지는 이양(李亮)이며, 어머니는 조혜(趙惠)의 딸이다.
1465년(세조 11) 생원이 되고,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수찬·교리·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을 역임하고, 1486년 홍문관응교로 경기도 여주·파주지역 수령의 치적을 조사, 보고하였다.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시강관을 거쳐, 1489년 직제학 재임 중에 처형된 매부 이륜(李掄)의 가재를 탈취하였다 하여 삭직되었다가 1492년 다시 기용되었다.
한어(漢語)와 이문(吏文)에 능하여 승문원참교를 거쳐 1493년 종부시정(宗簿寺正)을 지냈다. 1494년유구(琉球)의 사신이 오자 선위사(宣慰使)로서 맞이하였고, 승문원판교·공조참의를 거쳐, 1498년 형조·예조참의가 되었다.
1501년 동지중추부사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한성부우윤·호조참판을 지내고 1504년 갑자사화 때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중국어·이문에 있어서 당대의 일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