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백전

  • 문학
  • 작품
조선 후기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전(傳).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균태 (한남대학교, 국문학)
  • 최종수정 2025년 08월 05일
번암집 / 이충백전 미디어 정보

번암집 / 이충백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전(傳).

구성 및 형식

목판본. 저자의 문집인 『번암집(樊巖集)』 권55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서술자가 평양에 사는 한 협객의 행적을 입전(立傳)하여 그에 대한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내용

「이충백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충백은 평양의 대협객으로 불평스러운 일을 만나면 사람을 죽이기 일쑤였다. 광해군 때 평안감사인 박엽은 사납고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공포에 싸여 사는 지경이었다. 충백이 박엽의 기생과 정을 통하다가 발각되었다. 도망을 하여 서울로 온 충백은 개백정 도박꾼의 우두머리가 되어 지냈다.

어느날 저녁 창루(娼樓)에서 창기와 자고 있었는데 창기의 지아비가 소문을 듣고 들이닥쳤다. 그러나 충백은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창기의 지아비가 충백과 앉아 술을 마시다가 충백의 호기에 눌려 생사를 함께 하는 친구가 되었다.

박엽이 충백의 아버지를 잡아간 지 반년이 되어 충백이 박엽을 찾아갔다. 박엽은 충백을 보자 노염을 풀고 곁에 있던 김한풍과 씨름을 하게 하였다.

충백은 그에게 눈짓을 해서 씨름에서 이기고 목숨을 건졌다. 충백은 인조 때에 정묘 · 병자의 난에서 청나라 군사와 싸워 공을 세웠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항복소식을 듣고 시골로 돌아가 일생을 마쳤다.

서술자는 사평(史評)에서, 이충백이 개백정의 우두머리이기는 하였으나 용감성은 불출세의 인물이다. 일찍이 그에 대하여 들은 적도 있지만, 평안감사가 되어 김점(金漸)이 쓴 글을 보니, 쇄잡한 서너 단락이 협객으로서의 그의 풍모를 가렸다. 이 점이 유감스러웠으므로 「이충백전」을 고쳐 쓴다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충백전」의 서술자가 개백정이요 도박꾼인 충백을 협객으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다시 그의 전(傳)을 쓴 것은 그가 정묘 · 병자의 난에 개과천선하여 청병과 싸워 공을 세웠기 때문만도 아니다. 오히려 당시의 정치현실이 벌열정치(閥閱政治)와 당쟁으로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도 그 피해자로서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충백과 같은 협객이 절실하였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보고 자신의 현실적인 의지를 담아 입전한 것이다.

참고문헌

  • - 『번암집(樊巖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