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본. 저자의 문집인 『번암집(樊巖集)』 권55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서술자가 평양에 사는 한 협객의 행적을 입전(立傳)하여 그에 대한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이충백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충백은 평양의 대협객으로 불평스러운 일을 만나면 사람을 죽이기 일쑤였다. 광해군 때 평안감사인 박엽은 사납고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공포에 싸여 사는 지경이었다. 충백이 박엽의 기생과 정을 통하다가 발각되었다. 도망을 하여 서울로 온 충백은 개백정 도박꾼의 우두머리가 되어 지냈다.
어느날 저녁 창루(娼樓)에서 창기와 자고 있었는데 창기의 지아비가 소문을 듣고 들이닥쳤다. 그러나 충백은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창기의 지아비가 충백과 앉아 술을 마시다가 충백의 호기에 눌려 생사를 함께 하는 친구가 되었다.
박엽이 충백의 아버지를 잡아간 지 반년이 되어 충백이 박엽을 찾아갔다. 박엽은 충백을 보자 노염을 풀고 곁에 있던 김한풍과 씨름을 하게 하였다.
충백은 그에게 눈짓을 해서 씨름에서 이기고 목숨을 건졌다. 충백은 인조 때에 정묘·병자의 난에서 청나라 군사와 싸워 공을 세웠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항복소식을 듣고 시골로 돌아가 일생을 마쳤다.
서술자는 사평(史評)에서, 이충백이 개백정의 우두머리이기는 하였으나 용감성은 불출세의 인물이다. 일찍이 그에 대하여 들은 적도 있지만, 평안감사가 되어 김점(金漸)이 쓴 글을 보니, 쇄잡한 서너 단락이 협객으로서의 그의 풍모를 가렸다. 이 점이 유감스러웠으므로 「이충백전」을 고쳐 쓴다고 하였다.
「이충백전」의 서술자가 개백정이요 도박꾼인 충백을 협객으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다시 그의 전(傳)을 쓴 것은 그가 정묘·병자의 난에 개과천선하여 청병과 싸워 공을 세웠기 때문만도 아니다. 오히려 당시의 정치현실이 벌열정치(閥閱政治)와 당쟁으로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도 그 피해자로서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충백과 같은 협객이 절실하였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보고 자신의 현실적인 의지를 담아 입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