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연산군·중종 때에 정수강(丁壽崗)이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체소설.
구성 및 형식
내용
포절군은 기주(鄿州 : 원문은 ○州)출신이다. 선조 황(篁 : 대숲)이 해곡(嶰谷)에 은거하다가 황제의 눈에 띄어 전악(典樂)이 되었다. 그의 자손으로 위천(渭川)의 적적(籊籊)과 수양(首陽)의 고죽군(孤竹君)이 있다. 포절군은 고죽군의 후예이다.
포절군은 지기가 없음을 한탄하고 조래(徂徠)로 옮겨 십팔공(十八公 : 소나무)과 함께 방외(方外)의 벗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기욱(淇奧)의 승경을 보고 거기서 머물렀다. 그리고 위(衛)에 공이 있어 벼슬하였다(詩經 衛風 淇奧章을 변용). 포절군은 진(晋)나라의 죽림칠현이 찾아와 술에 취하여 무례히 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라의 중신들이 술에 취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음을 개탄하였다. 그리고 나서 황주(黃州) 석가산(石假山)에 은둔하였다.
포절군은 흑제(黑帝 : 겨울)와 동군(東君 : 봄)이 때를 다툴 때도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이를 본 소식(蘇軾)이 제(帝)에게 상주하여 포절군이라는 작호를 내리기를 권하였다. 임금이 포절군에게 소상(瀟湘)을 주어 탕목읍(湯沐邑)을 삼게 하였다.
송나라의 왕안석(王安石)이 법을 고친 뒤에 그는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같은 병을 얻어 조갈증으로 죽었다. 자손으로 차군이 있다. 「포절군전」의 서술자는 사평(史評)에서 포절군을 열장부(烈丈夫)라 일러 포절군의 정신이 자손에게 끼쳐 차군에 봉해졌으니, 향명(香名)이 천지와 함께 남을 것이라고 예찬하였다.
의의와 평가
작자는 유가적 사상을 기저로 현실참여를 주장하고 정변과 사화로 인한 포폄(褒貶 :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이 불공평하였던 관료사회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참고문헌
- 『월헌집(月軒集)』
- 『한국가전연구(韓國假傳硏究)』(안병열, 이우출판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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