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중예(仲豫), 호는 월연(月淵). 지돈녕부사 이자(李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증석(李曾碩)이고, 아버지는 교위(校尉) 이사필(李師弼)이며, 어머니는 진사 유자공(柳子恭)의 딸이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이다.
1507년(중종 2)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510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512년 봉교로 재직중 모친의 병을 거짓 칭탁하고 사직, 창기(娼妓)와 함께 하향한 것이 문제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1519년 함경도도사로 있을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뒤에 등용되어 1532년 삼척부사가 되었으나 탐학죄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삭직된 뒤 향리에 은퇴,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일찍이, 한원(翰苑)에 있을 때 김안로(金安老)가 병풍에 휘호하기를 요청했는데 이를 거절하였으므로 여러 모함을 받았다. 김정국(金正國)·이현보(李賢輔)·권벌(權橃) 등과 교유하였으며, 문장에 능하고 글씨가 뛰어났다. 저서로는 『월연집(月淵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