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계형(季亨). 부제학 이응시(李應時)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특히 시가를 좋아하였다. 오랫동안 과거에 등제하지 않다가 만년에 음사로 나아가 누천(累遷: 여러 벼슬을 거침)하여 용담현령에 이르렀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항상 절약을 실천하고 봉공에 힘써 이에 대한 포상도 많았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때에는 많은 서인계통의 선비들과 함께 세자책봉의 시기상조임을 항소하였고, 송시열(宋時烈)이 화를 당하고 파직되자 동지들과 함께 대궐에 나아가 호읍(號泣: 소리 높여 울음)하였다. 관(官)은 사직서영(社稷署令)에까지 올랐고, 감찰로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