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鼎叔), 호는 도곡(陶谷). 이인후(李仁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해창(李海昌)이고, 아버지는 이만익(李晩益)이며, 어머니는 조중운(趙仲耘)의 딸이다.
1706년(숙종 32) 형조판서 조상우(趙相愚)로부터 학행으로 천거받아 성균관에 들어갔고,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13년에는 시강원설서에 이르렀다. 평소에 경사(經史)를 탐독, 이에 정통하였고 널리 백가서(百家書)에 두루 관통하여 시문에 뛰어났으며 글씨도 잘 썼다. 언론에도 청직(淸直: 청렴하고 곧음)하여 편벽하고 과격함을 삼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