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장령, 대사간,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내경(來卿)
초암(草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59년(영조 35)
사망 연도
1840년(헌종 6)
본관
진보(眞寶,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
주요 관직
장령|대사간|참판
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대사간,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내경(來卿). 이수약(李守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관(李世觀)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구원(李龜元)이며, 어머니는 이헌복(李憲復)의 딸이다. 이병원(李秉遠)·강운도(姜橒道) 등과 교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3년(정조 7) 생원이 되고, 1801년(순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등제한 뒤, 1806년 2월 행(行) 홍문록에 오르고, 그해 5월에는 도당회권(都堂會圈: 의정부에서 관리를 선발할 때 피선될 사람에게 권점을 찍음)에서 6점을 받았다.

1810년 장령이 되었을 때 정사습(正士習)·금사치(禁奢侈)·택사목(擇司牧)·휼민막(恤民瘼)의 시무4조의 소를 올려 왕으로부터 가납을 받기도 하였다.

1818년 정약용(丁若鏞)이 사학(邪學)에 연루되어 유배가는 것은 억울하다는 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823년 대사간의 지위에 올랐다. 평소 선조의 유훈을 지켜 지나친 욕심을 삼가하였고 관직은 참판에까지 올랐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서산문집(西山文集)』
『진보이씨세보(眞寶李氏世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