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내경(來卿). 이수약(李守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관(李世觀)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구원(李龜元)이며, 어머니는 이헌복(李憲復)의 딸이다. 이병원(李秉遠)·강운도(姜橒道) 등과 교유하였다.
1783년(정조 7) 생원이 되고, 1801년(순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등제한 뒤, 1806년 2월 행(行) 홍문록에 오르고, 그해 5월에는 도당회권(都堂會圈: 의정부에서 관리를 선발할 때 피선될 사람에게 권점을 찍음)에서 6점을 받았다.
1810년 장령이 되었을 때 정사습(正士習)·금사치(禁奢侈)·택사목(擇司牧)·휼민막(恤民瘼)의 시무4조의 소를 올려 왕으로부터 가납을 받기도 하였다.
1818년 정약용(丁若鏞)이 사학(邪學)에 연루되어 유배가는 것은 억울하다는 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823년 대사간의 지위에 올랐다. 평소 선조의 유훈을 지켜 지나친 욕심을 삼가하였고 관직은 참판에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