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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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윤지의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된 모반인. 문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나주괘서사건
  • 본관한산(韓山)
  • 사망 연도1755년(영조 3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나주목사
  • 출생 연도1686년(숙종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정희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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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윤지의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된 모반인.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아버지는 동래부사(東萊府使) 명준(明浚)이며, 신임사화 때의 역신 명언(明彦)·명의(明誼)의 조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1년 (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747년 나주목사로 있을 때 수관문제(輸款問題: 세의 운반으로 일어난 문제)로 동래에 유배되었고, 괘서사건을 일으킨 윤지(尹志)와는 벗으로 지냈다.

나주괘서사건이 일어났을 때, 임국훈(林國薰)·이효식(李孝植) 등과 함께 연루되었는데, 임국훈이 관에 바친 상자 속에는 윤지와 서신교환을 한 사람 가운데 이하징의 서찰이 가장 많았으며, 그 내용 또한 친밀하여 골육과 같았다.

왕이 친국을 할 때 취상(就商: 윤지의 아버지)의 역적행위를 부인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얻어 종성으로 유배되었다가, 복주(伏誅)되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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