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아버지는 동래부사(東萊府使) 명준(明浚)이며, 신임사화 때의 역신 명언(明彦)·명의(明誼)의 조카이다.
1721년 (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747년 나주목사로 있을 때 수관문제(輸款問題: 세의 운반으로 일어난 문제)로 동래에 유배되었고, 괘서사건을 일으킨 윤지(尹志)와는 벗으로 지냈다.
나주괘서사건이 일어났을 때, 임국훈(林國薰)·이효식(李孝植) 등과 함께 연루되었는데, 임국훈이 관에 바친 상자 속에는 윤지와 서신교환을 한 사람 가운데 이하징의 서찰이 가장 많았으며, 그 내용 또한 친밀하여 골육과 같았다.
왕이 친국을 할 때 취상(就商: 윤지의 아버지)의 역적행위를 부인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얻어 종성으로 유배되었다가, 복주(伏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