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동래부사,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수찬|수찬|교리|지평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정희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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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동래부사,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사직(司直) 이언형(李彦衡)이며, 홍봉한(洪鳳漢)의 생질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원래 예문관검열이었으나 영사(領事)와 친혐(親嫌)으로 체직(遞職)되어 예문관의 규식에 의하여 1763년(영조 39) 시강원설서가 되었다.

이후 헌납·부수찬·수찬·교리·지평을 거쳐 1771년 장령에 이르렀다. 이때 환관과 시전상인과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한때 고역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곧 송라찰방(松羅察訪)으로 임명, 불응하였다가 1773년 영의정 김상복(金相福)의 천거로 동래부사가 되었다. 그 뒤 승지·대사간을 역임하였으나, 1776년(정조 즉위년) 홍인한의 당여로 몰려 사헌부로부터 삭출탄핵을 받았다.

1777년(정조 1) 홍계능(洪啓能)과 홍지해(洪趾海)·홍찬해(洪纘海)·홍술해(洪述海) 3형제 및 홍상길(洪相吉) 형제일파가 일으킨 존현각적변(尊賢閣賊變)에 연루되어 역모동참으로 결안(結案)되었으나 그 어머니가 자궁지친(慈宮至親: 임금의 어머니와 인척관계)이므로 왕의 배려로 단지 지정불고죄(知情不告罪)의 죄목만 적용되었다. 적변의 주모자의 하나인 홍찬해와는 서로 동서 사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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