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사직(司直) 이언형(李彦衡)이며, 홍봉한(洪鳳漢)의 생질이다.
원래 예문관검열이었으나 영사(領事)와 친혐(親嫌)으로 체직(遞職)되어 예문관의 규식에 의하여 1763년(영조 39) 시강원설서가 되었다.
이후 헌납·부수찬·수찬·교리·지평을 거쳐 1771년 장령에 이르렀다. 이때 환관과 시전상인과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한때 고역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곧 송라찰방(松羅察訪)으로 임명, 불응하였다가 1773년 영의정 김상복(金相福)의 천거로 동래부사가 되었다. 그 뒤 승지·대사간을 역임하였으나, 1776년(정조 즉위년) 홍인한의 당여로 몰려 사헌부로부터 삭출탄핵을 받았다.
1777년(정조 1) 홍계능(洪啓能)과 홍지해(洪趾海)·홍찬해(洪纘海)·홍술해(洪述海) 3형제 및 홍상길(洪相吉) 형제일파가 일으킨 존현각적변(尊賢閣賊變)에 연루되어 역모동참으로 결안(結案)되었으나 그 어머니가 자궁지친(慈宮至親: 임금의 어머니와 인척관계)이므로 왕의 배려로 단지 지정불고죄(知情不告罪)의 죄목만 적용되었다. 적변의 주모자의 하나인 홍찬해와는 서로 동서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