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병조참의, 경상도관찰사,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눌재(訥齋)
  • 정숙(靜叔)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 사망 연도1669년(현종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참의|경상도관찰사|이조참의
  • 출생 연도1615년(광해군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영정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이태연 글씨 미디어 정보

이태연 글씨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참의, 경상도관찰사,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 이게(李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승지 이도(李濤)이고,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이덕사(李德泗)이며, 어머니는 부호군 박정로(朴廷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5년(인조 13) 진사가 되고, 1642년(인조 20) 진사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자·검열을 거쳐 이듬해 대교가 되고, 1646년 설서(說書)·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공산현감·수찬을 지내고 낙당(洛黨) 김자점(金自點)의 일파로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가, 1652년 당진현감에 등용되었다. 이듬해 교리로서 대간의 월권행위를 상소하다가 도리어 파직되고, 1656년 필선으로 복직되어 보덕·사간·응교 등을 지냈다.

이듬해 수원부사가 되고, 1659년 충청도관찰사로 재직 중 도내의 유배죄인 7명을 임의로 풀어주었다가 다시 파직당하였으나, 이듬해 경주부윤으로 복직되었다.

1661년(현종 2) 전라도관찰사에 이어 승지·병조참의를 지내고, 1666년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1668년 대사간·이조참의를 지내고, 이어 평안도관찰사를 지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