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일제시대에 건설된 본궁화학공장과 1961년 완공된 2·8비날론공장, 그리고 관련 화학공장 및 광산을 통합,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1935년 건설된 본궁화학공장, 즉, 1936년에 가동된 일본질소 본궁비료공장도 한반도를 대륙침략의 식량보급기지화 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이렇듯 일본에 의해 주도된 당시 북한지역의 화학공업은 일본의 과학기술 수준이 국제적으로 최상위권에 있었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하여 공장시설의 대단위화가 이루어졌으므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일제말기에 와서 생산시설의 혹사로 설비가 노후된데다가 패전 후 일본이 고의적으로 설비를 파괴함으로써 광복 후 북한은 시설복구에 주력하였는데 본국화학공장의 경우도 외는 아니었다.
본궁화학공장은 주요시설들을 수리 · 복구한 데 이어 1961년 초 염화비닐공장을, 그리고 1962년에는 부탄올직장을 새로 조업하는 등 확장공사가 추진되었다, 2·8비날론연합기업소의 주요생산품목은 비발론 5만t과 염화비닐 5만t을 비롯해 가성소다 5만7천t, 부탄올 3천t, 농약 9천t, 석회징소비료 5만t, 염료 9백t, 카바이드 37만5천t, 탄산소다 1천t, 에탄올 1천t 등이다.
북한은 김일성(金日成)이 1991년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함남도당 확대회의를 주재, 함흥시를 ‘종합적인 대화학공업단지’로 조성할 것을 주장하면서 2·8비날론기업소에 산소분리기직장 건설을 지시함에 따라 그 해 2월부터 공사에 들러가 11월에 1단계 공사를 완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