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맹휴(孟休), 호는 약와(約窩).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이효제(李孝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석보(李碩輔)이고, 아버지는 이명화(李命和)이며, 어머니는 김사국(金師國)의 딸이다. 이재화(李再和)에게 입양되었다.
1747년(영조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84년(정조 8)에는 홍문록(弘文錄)에 오르고, 같은해 교리가 되었다. 교리로서 왕에게 많은 소를 올려 자신의 주장을 정책으로 펴는 데 진력하였다.
특히 그는 언로를 개방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당시 펼쳐야 할 정책사항으로 여섯가지를 들어 왕에게 올렸다. 즉, ① 징토(懲討)를 엄히 할 것, ② 실학(實學)에 힘쓰게 할 것, ③ 수성(修省)을 부지런히 할 것, ④ 구활(救活)에 급선무를 둘 것, ⑤ 현재(賢才)를 등용할 것, ⑥ 검약을 숭상할 것 등이 그것이다.
그는 또한 조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여 국고를 부유하게 하고, 민력을 고되지 않게 하도록 진언하였다. 그는 학문에 게으르지 않았으며, 대인관계에도 항상 온후하고, 정치일선에서는 왕에게 직언을 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