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맹휴(孟休)
  • 약와(約窩)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 사망 연도1789년(정조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교리
  • 출생 연도1721년(경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균 (부산수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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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맹휴(孟休), 호는 약와(約窩).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이효제(李孝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석보(李碩輔)이고, 아버지는 이명화(李命和)이며, 어머니는 김사국(金師國)의 딸이다. 이재화(李再和)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7년(영조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84년(정조 8)에는 홍문록(弘文錄)에 오르고, 같은해 교리가 되었다. 교리로서 왕에게 많은 소를 올려 자신의 주장을 정책으로 펴는 데 진력하였다.

특히 그는 언로를 개방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당시 펼쳐야 할 정책사항으로 여섯가지를 들어 왕에게 올렸다. 즉, ① 징토(懲討)를 엄히 할 것, ② 실학(實學)에 힘쓰게 할 것, ③ 수성(修省)을 부지런히 할 것, ④ 구활(救活)에 급선무를 둘 것, ⑤ 현재(賢才)를 등용할 것, ⑥ 검약을 숭상할 것 등이 그것이다.

그는 또한 조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여 국고를 부유하게 하고, 민력을 고되지 않게 하도록 진언하였다. 그는 학문에 게으르지 않았으며, 대인관계에도 항상 온후하고, 정치일선에서는 왕에게 직언을 잘하였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선고(淸選考)』

  • - 『정재집(定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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