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원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선공감첨정, 집의,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가연(可衍)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479년(성종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형조정랑|선공감첨정|집의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선공감첨정, 집의,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연(可衍). 이홍길(李弘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일영(李日英)이고, 아버지는 예문관제학 이선제(李先齊)이다. 사람됨이 풍채가 단정하고 아름답고 수려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51년(문종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가 되고, 1465년(세조 11) 형조정랑이 되었다. 1468년 전적 등을 역임하고 이 해에 전라도어사가 되어 군기(軍器)와 조운(漕運)을 독찰하였다.

1469년(예종 1) 선공감첨정으로 천문학사를 겸직하였고, 1472년(성종 3) 집의가 되었다. 1478년 전한,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다. 신숙주(申叔舟)가 죽을 때 성종이 “할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신숙주가 말하기를 “원컨대 일본과 화친을 끊지 마소서.” 하였다.

성종은 이 말을 옳게 여겨 부제학 이형원과 서장관 김흔(金訢)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으나, 통신사 이형원은 대마도에 이르러 해로가 험난하고 풍파에 놀라 병이 되어 글을 올려 이 사정을 말하였다.

성종은 국서와 폐백만 대마도주에게 전하고 돌아오게 명하여, 이로부터는 다시 사신을 보내지 않고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예로써 접대할 뿐이었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예종실록(睿宗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