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선공감첨정, 집의,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9년(예종 1) 선공감첨정으로 천문학사를 겸직하였고, 1472년(성종 3) 집의가 되었다. 1478년 전한,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다. 신숙주(申叔舟)가 죽을 때 성종이 “할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신숙주가 말하기를 “원컨대 일본과 화친을 끊지 마소서.” 하였다.
성종은 이 말을 옳게 여겨 부제학 이형원과 서장관 김흔(金訢)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으나, 통신사 이형원은 대마도에 이르러 해로가 험난하고 풍파에 놀라 병이 되어 글을 올려 이 사정을 말하였다.
성종은 국서와 폐백만 대마도주에게 전하고 돌아오게 명하여, 이로부터는 다시 사신을 보내지 않고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예로써 접대할 뿐이었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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