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연(可衍). 이홍길(李弘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일영(李日英)이고, 아버지는 예문관제학 이선제(李先齊)이다. 사람됨이 풍채가 단정하고 아름답고 수려하였다.
1451년(문종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가 되고, 1465년(세조 11) 형조정랑이 되었다. 1468년 전적 등을 역임하고 이 해에 전라도어사가 되어 군기(軍器)와 조운(漕運)을 독찰하였다.
1469년(예종 1) 선공감첨정으로 천문학사를 겸직하였고, 1472년(성종 3) 집의가 되었다. 1478년 전한,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다. 신숙주(申叔舟)가 죽을 때 성종이 “할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신숙주가 말하기를 “원컨대 일본과 화친을 끊지 마소서.” 하였다.
성종은 이 말을 옳게 여겨 부제학 이형원과 서장관 김흔(金訢)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으나, 통신사 이형원은 대마도에 이르러 해로가 험난하고 풍파에 놀라 병이 되어 글을 올려 이 사정을 말하였다.
성종은 국서와 폐백만 대마도주에게 전하고 돌아오게 명하여, 이로부터는 다시 사신을 보내지 않고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예로써 접대할 뿐이었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