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원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비변사제조,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남계(南溪)
  • 선경(善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798년(정조 2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의주부윤|전라좌도수군절도사|경상도관찰사
  • 출생 연도1739년(영조 1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비변사제조,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경(善卿), 호는 남계(南溪). 이홍서(李弘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재항(李載恒)이고, 아버지는 이방현(李邦賢)이며, 어머니는 조화벽(趙和璧)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1765년 예문관의 검열이 되고 헌납(獻納)·정언(正言)을 거쳐 1772년 회양부사가 되었다.

1777년(정조 1) 사간, 1783년 의주부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784년에는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1787년 대사간에 올랐다. 1790년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1792년에는 다시 대사간에 올라 강직한 탄핵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동지 겸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들어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1796년에는 비변사제조가 되었다. 그 이듬해인 1797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서는 지방 유력자들을 누르고 서민들을 위하여 전정(田政)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한편, 효열(孝烈)을 장려하고 노비들의 신공(身貢)을 덜어주기 위하여 중앙정부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1798년 이 지방에 흉년이 들어 고통을 받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빈민들에게 나누어줄 곡식의 보급이 늦어져 소란이 생기자, 이에 대한 영남어사(嶺南御史) 여준영(呂駿永) 등의 탄핵을 받고 가산군(嘉山郡)으로 귀양가 그곳에서 죽었으나, 그뒤 곧 신원되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