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선(士善). 중종의 일곱째아들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응천군 이돈(凝川君 李潡)이며, 아버지는 이석한(李錫漢)이다.
1674년(현종 15) 무과에 급제, 훈련대장으로 있을 때 청나라에서 심양성(瀋陽城)을 증축하니 우리도 평안도 방면의 군비를 충실히 할 것을 청하였다. 벼슬이 포도대장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이르렀다.
숙종이 죽었을 때 김일경(金一鏡) 등이 환관·궁녀들과 결탁하여 조정을 뒤집으려 하였으나, 그의 호위(扈衛)가 삼엄하여 간사배들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경종이 즉위하였으나 아들이 없자 김창집(金昌集) 등과 함께 건저(建儲)하기를 거듭 청하여 연잉군(延礽君: 후에 영조)을 왕세제로 삼아 국가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데 공이 컸다.
1720년(경종 즉위년) 포도대장으로 있으면서 술사(術士) 육현(陸玄)을 태장을 쳐 죽인 일이 있었는데, 육현이 김창집의 음모사실을 알기 때문에 김창집이 그를 시켜 죽이게 하였다고 김일경 등이 조작하여 옥사를 일으켰다.
또한 1722년 다시 목호룡(睦虎龍)이 경종을 시해하려는 모의가 있었다는 이른바 삼급수(三急手)의 고변에 관련되어 하옥되었다. 김일경이 본래 그를 미워하였으므로 직접 가혹하게 심문하였으나 끝까지 불복하다가 마침내 모진 매로 인하여 죽었다.
죽은 뒤 가산이 적몰되고 가옥은 목호룡에게 상급으로 나갔다. 1741년(영조 17) 관작이 복직되고 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