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돈헌(遯軒).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역학(易學)으로 이름이 높았던 괴산군수(槐山郡守) 이득윤(李得胤)이며, 어머니는 옥구장씨(沃溝張氏)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 장징(張徵)의 딸이다. 청주(淸州)가 세거지(世居地)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이며, 송시열(宋時烈)과도 교유를 가졌다.
1615년(광해 7) 성균(成均)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1644년(인조 22) 57세 때 비로소 성현(省峴) 찰방(察訪)에 부임하였으나 모친상으로 곧 사직하였다.
대개 60세 이후로는 향인(鄕人)들에 의해 도훈장(都訓長)·산장(山長: 서원의 책임자)에 추천되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이홍유의 조부 이잠(李潛) 이하 4대가 모두 성균진사로서 산당의 임무를 맡았던 교육자의 가문이며, 특히 조부와 부친은 청주의 신항서원(莘巷書院)에 제향되었다.
1770년(영조 46)에 장악원(掌樂院) 정(正)에 증직(贈職)되었다. 『둔헌집(遯軒集)』 4권 2책이 있으며, 1890년(고종 27)에 개간(開刊)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