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유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둔헌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돈헌(遯軒)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671년(현종 1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현찰방
  • 출생 연도1588년(선조 21)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순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둔헌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돈헌(遯軒).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역학(易學)으로 이름이 높았던 괴산군수(槐山郡守) 이득윤(李得胤)이며, 어머니는 옥구장씨(沃溝張氏)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 장징(張徵)의 딸이다. 청주(淸州)가 세거지(世居地)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이며, 송시열(宋時烈)과도 교유를 가졌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5년(광해 7) 성균(成均)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1644년(인조 22) 57세 때 비로소 성현(省峴) 찰방(察訪)에 부임하였으나 모친상으로 곧 사직하였다.

대개 60세 이후로는 향인(鄕人)들에 의해 도훈장(都訓長)·산장(山長: 서원의 책임자)에 추천되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이홍유의 조부 이잠(李潛) 이하 4대가 모두 성균진사로서 산당의 임무를 맡았던 교육자의 가문이며, 특히 조부와 부친은 청주의 신항서원(莘巷書院)에 제향되었다.

1770년(영조 46)에 장악원(掌樂院) 정(正)에 증직(贈職)되었다. 『둔헌집(遯軒集)』 4권 2책이 있으며, 1890년(고종 27)에 개간(開刊)되었다.

참고문헌

  • - 『돈헌집(遯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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