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994. 만주(滿洲) 출생. 1939년 만주 신경법정대학(新經法政大學)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천성이 스포츠를 좋아한데다 학생 시절부터 야구를 즐겨하였고, 만주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야구선수로 활약하였다.
광복과 더불어 조국으로 돌아와 1946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49년에는 육군 야구부의 초대부장이 되었다. 1951년에는 육군본부 병참감·재무감, 1955년에는 육군본부 관리참모차장을 역임한 뒤 1959년에 육군소장으로 예편하였다.
1955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감독으로 참가하여 3위에 입상하였다. 그러한 공로로 1955년과 1960년에 대한야구협회 이사를 거쳐 1960년에 대한야구협회 이사장, 대한연식야구협회 회장을 지냈고, 1961년에는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62년 8월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 단장으로 임원 23명과 선수 174명을 인솔하여 종합순위 3위를 기록하였다. 1963년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으로, 1964년 일본 동경올림픽대회에 참가하여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 대표로 노력하였으나 애석하게도 결렬되었다.
1974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무역협회 고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대한노인회 서울특별시연합회 회장, 1982년 서울올림픽경기대회 준비위원, 1985년 대한체육회 고문을 지냈고, 1985년부터 1991년까지는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군에 재직 중에 금성충무훈장(金星忠武勳章)과 미국 동성무공훈장(銅星武功勳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