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영조 31)에 일어난 윤지(尹志)의 나주괘서사건의 연루자이다.
윤지가 처음 일을 도모할 때 그는 김항(金沆)부자·임국훈(林國薰)부자·이제춘(李齊春)·나귀영(羅貴永)·기언표(奇彦杓)·오시대(吳時大)부자·이종무(李宗茂) 등과 더불어 모의를 하였다.
나주의 하리(下吏)인 그는 같은 하리인 임천대(林天大)와 더불어 하계(下稽)를 조직하고 그 세력을 더욱 확대시켜나갔다.
특히, 그는 윤지가 제주도로부터 나주에 왔을 때 그에게 10여 년간이나 『통감(通鑑)』을 배운 일이 있으며, 윤지의 첩의 오라버니 독동(禿同)과는 가장 친밀한 관계여서 일이 성공하면 나주목사로 삼으려고 하였다.
또, 그는 윤지의 노(奴) 개봉(介奉)이 객사 망화루(望華樓)에 괘서를 붙일 때, 이제춘·이정하(李鼎夏), 송포(松浦)에 사는 임가(林哥)의 성을 가진 사람과 함께 있었음이 문초결과 드러나 지정불고죄(知情不告罪)로 함께 복주(伏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