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은진현감, 금성군수, 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중(子重)
남곡(南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11년(광해군 3)
사망 연도
1668년(현종 9)
본관
전주
주요 관직
은진현감|금성군수|광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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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은진현감, 금성군수, 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중(子重), 호는 남곡(南谷).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천군(龜川君) 이수(李睟)이고, 아버지는 봉래군(蓬萊君) 이형윤(李炯胤)이며, 어머니는 최행(崔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643년 유학으로서 김상헌(金尙憲)·이경여(李敬輿) 등을 재상에 임명할 것을 소청(疏請)하여 임용하게 하였다. 1644년(인조 2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1650년(효종 1) 지평으로 춘추관기주관이 되어『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정언(正言)·문학(文學)·장령(掌令) 등을 지냈다. 1660년(현종 1) 고부사(告訃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집의로 실록청의 편수관이 되어 『효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동안 은진현감·금성군수·광주목사(光州牧使)·홍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667년 사간으로 있을 때 조선에 표착한 청인(淸人)의 송환을 위협적으로 요구해온 청나라에 대하여 비굴한 정책을 쓴 대신들을 탄핵하다가 유배된 이숙(李䎘) 등 간관들의 구제를 역설한 죄로 온성에 유배되었다. 그뒤 한재(旱災)로 방환(放還)되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송자대전(宋子大全)』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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