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의 방량·면천(免賤)·쟁소(爭訴) 등의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된 특수관부로서 노비의 부적(簿籍)과 결송(決訟)을 관장하는 정규관부인 도관(都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처음 설치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1276년(충렬왕 2) 인물추고도감에 관한 기사가 보이며, 유사한 기능을 가진 제주도루인물추쇄색(濟州逃漏人物推刷色)·과부처녀추고별감(寡婦處女推考別監) 등이 1275년과 1276년에 각각 설치된 것으로 보아 이 도감도 이때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1281년회문사(會問司)로 개칭되었고, 1391년(공양왕 3) 인물추변도감(人物推辨都監)으로 개칭되었으나, 고려의 멸망과 함께 실무는 도관으로 이관되었다. 관직으로는 별감(別監)과 녹사(錄事)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