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인생관을 어느 특정한 시대에 국한해서 말한다는 것은 쉽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다. 우리 나라 사람도 인간 일반이 지니고 있는 보편성이 더욱 넓고 크다는 면에서 보면 특별히 한국인의 인생관을 따로 떼어서 말할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지내오는 동안에 형성된 한국인의 삶에 대한 공통적인 특성을 몇 가지 항목으로 말할 수 있다.
(1) 만물 가운데 가장 귀중한 사람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다고 보는 것은 중국의 고대 문헌 가운데도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므로 동양 일반의 공통적인 생각일 것이다.
≪상서 尙書≫ 태서(泰書)에 “오직 사람만이 만물 가운데 영험하다(惟人萬物之靈).”고 말하고 있고, ≪백호통의 白虎通義≫에 “천지의 성품 가운데 사람이 귀하다(天地之性人爲貴).”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열자 列子≫에 “하늘은 만물을 낳았으나 오직 사람이 귀하다(天生萬物, 唯人爲貴).”고 말하고 있고, 중세기에 주돈이(周敦頤)는 ≪태극도설 太極圖說≫ 가운데서 “오직 사람만이 가장 빼어남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唯人也得其秀而最靈).”고 말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만물 가운데 사람이 귀하다고 표현한 것은 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 잘 나타나고 있다. 천신(天神)인 환웅(桓雄)이 탐구인세(貪求人世)한다고 했고, 지신(地神)인 곰도 모두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천신과 지신은 모두 신인 이상 사람보다 월등한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으나, 모두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는 것은 신이 인간의 구제를 위해서 사람이 된다는 보편적 테마 이상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단군신화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신보다도 더욱 귀중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신중심주의라기보다는 인간중심주의를 선포하고 있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중국의 고대 문헌 가운데도 표현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동양의 보편적인 사상임을 알 수 있다.
≪춘추좌전≫ 장공(莊公) 32년조에 보면 “내가 듣건대, 나라가 장차 흥하려면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라가 장차 망하려면 신의소리에 귀를 기울인다(吾聞之 國將興聽於民 國將亡聽於神).”고 하여 신의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밝히고 있다. 사람이 신보다도 더욱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책 환공(桓公) 6년조에 보면 “무릇 백성은 신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먼저 백성을 이루고 난 뒤에 신에게 힘을 다하는 것이다(夫民神之主也 是以聖人先成民而後致力於神).”고 하여 더욱 분명하게 사람이 신지주(神之主)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 신보다도 더욱 귀중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신의 나라보다도 이 세상이 더욱 좋은 것으로 묘사되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불교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기 이전에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에 대한 뚜렷한 관념을 가지지 않았다. 저승은 화려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묘사되기보다는 어둡고 춥고 괴로운 곳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저승보다는 이 세상이 훨씬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지는 현세중심주의가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 더욱 강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떠도는 귀신들조차 이 세상 주위에서 맴도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의 현세중심주의와 낙천성은 이런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신이라든가 혹은 이념 중심보다는 인간 중심에서 오는 장단점도 생겨나고 있다. 통상적으로 서양 사람들이 이념으로 생각하는 추상적인 개념, 예를 들어 ‘질적 수준’·‘정직’·‘객관성’ 따위에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에 반해 한국인은 사람에게 가장 높은 가치를 두어 서양의 그것을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추상적인 목표에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였을 때 한국인은 그러한 제도보다도 인간이 더욱 중심적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2) 나보다 소중한 우리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에 살면서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라는 말의 빈번한 사용일 것이다. 그 외국인이 만약 ‘우리’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만큼 ‘우리’ 안에 들어가 있지 못하면 그는 영원히 이방인으로 머물고 한국인과 진정한 정을 나누는 인간 관계를 맺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포함하는 것이고 ‘나’보다 더 큰 세계이다. ‘우리’의 관념이 가족주의적인 발상에서 온 것이든지 혹은 오랜 농경민들의 공동 생활의 경험에서 온 것이든지 간에 한국인의 인간 중심적 관념과 결부되어 한국인의 독특한 가치 체계를 이룬 것만은 틀림없다.
이러한 ‘우리’ 의식은 모든 사람을 가족관계의 일원으로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친절과 정(情)을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한국인들의 따뜻한 정과 친절함이다. 한국인의 이런 태도는 최근의 한국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이미 19세기에 ≪한국천주교회사≫를 쓴 달레(Dallet, C. C.)의 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는 “한국인들의 가장 훌륭한 장점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형제에 대한 사랑의 법칙을 선천적으로 지키며 이 법칙을 완전히 일상생활에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형제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면 그들 사이에는 절대로 친척이나 친지들의 범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상호협동과 타인에 대한 조건없는 그 환대, 그 아름다운 심정이야말로 한국민족의 민족성에 있어서 하나의 훌륭한 특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 한민족은 현대문명이 초래한 이기주의에 물든 백성들에 비한다면 얼마나 우수한 사람들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프랑스 선교사로 처음 온 이방인 달레가 크리스트교를 모르는 백성들이 형제애를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는 점에 놀라움을 나타낸 말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홍수나 화재를 당하여 피해를 입은 이재민이나 괴로운 사람을 돕는 데 정부의 구호를 기다리지 않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아낌없는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또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을 돕는 동네 사람들, 여행자를 위해 온정을 베풀어주는 사람, 약을 가진 집에서 고생하는 사람에게 약을 주면서도 돈을 받지 않는 선행, 한 농부가 가지고 있는 농기구 같은 것을 누구나 얼마든지 무료로 빌려갈 수 있는 일, 가난한 농부라도 길가에서 밥을 먹다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같이 먹자고 권할 수 있는 온정미 넘치는 일도 보았을 것이다.
이와 함께 초상이 났을 때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풍습, 제사를 지낸다든지 잔치한 집에서는 이웃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기 전에는 모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처럼 생각하는 이웃사랑, 가난한 사람이라도 배가 고플 때에는 부유한 사람에게서 언제나 밥 한 그릇을 얻어먹을 수 있는 풍습을 접하고 프랑스의 선교사는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크리스트교적인 신앙을 알기도 전에 크리스트교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이웃사랑을 아무 어려움 없이 실천하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을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달레는 친절뿐만 아니라 솔직성과 신뢰하는 태도, 예의 범절에서 한국인이 중국인보다 우수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 국민의 성격은 행동에 있어서나 태도의 솔직성을 통하여서라도 이웃나라 사람들과 구별되었다. 조선사람은 비록 하층계급일지라도 본성이 성실하며 낙천적이나, 그렇다고 하여 명랑한 활동과 자유가 없다는 것은 아니며 이같은 것은 접촉해 갈수록 명백해진다. 그들은 대개 고결하고 또 친절하며 한번 상대방이 자기에 대해 호의를 가진다는 것을 알면 즉시 외국인일지라도 어린아이같이 믿는 태도를 가진다.”고 적고 있다.
그 당시의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인들은 온화하고 친절하며 남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는 동안 한국인들의 친절을 한결같이 꼽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며 역사적인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대가족 안의 ‘우리’에 포괄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매우 복잡한 관계의 언어를 발전시켰다.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배울 때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관계의 언어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존칭어들이 배우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관계가 수립되면 그 관계는 매우 소중한 것이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호존경과 공유의 뜻이 있게 된다. 유교가 한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토착화된 산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에 ‘우리’가 나를 포괄하는 면이 강할 때에는 나의 개인 의식이 전체 속에 파묻힐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학생들은 개인 의견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몹시 독자적이고 개체로서 뚜렷하고 싶어하면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의 학생들과 크게 대조되는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3) 학문·음악·무용을 즐기는 민족
한국인의 현세적 낙천성은 학문과 음악과 춤을 즐기는 특성에서도 나타난다. 세계의 어느 민족이나 이것을 즐기지 않는 민족이 없겠지만 고대부터 외국인들이 특히 한국인을 관찰하고 독특하게 본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할 것이다.
중국의 고대 역사책을 보면 중국의 여행객들이 고구려지역을 다녀보고 한국 백성들은 어디를 가나 글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18세기에 선교사로 왔던 레지스 신부도 “한국인들은 학문을 사랑하며 중국말을 잘 알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처럼 다른 무엇보다 교육을 우선으로 하고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 돈을 쓰는 나라는 못 본 것 같다고 오늘날의 외국인들도 말하고 있다.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그 나라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소수 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대학교수·신문기자·과학자 등과 같은 지적 분야에 가장 많이 종사하는 민족이라는 것도 통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와 춤에 대해서도 유사한 말을 할 수 있다. 중국의 25(史) 가운데 한국 민족에 관계된 부분에서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한국인은 노래와 춤을 잘 한다는 점이다. 중국인의 눈에 주야무휴로 노래와 춤을 즐기는 풍습이 특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19세기에 우리 나라에 온 오페르트(Oppert, E. J.)는 ≪조선기행≫이라는 글에서 “아시아민족 중에서 조선사람보다 음악에 대해 더 열렬한 애호심을 가진 민족은 없을 것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이 얼마나 풍부한 소질과 재능을 가진 민족인지 생소한 서양음악에 대해서도 즉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인 백성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는 중국과 비교하면서 “확실히 중국인에게는 음악적 청각이 결핍되어 있고 그와 반대로 조선 사람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한 이방인의 주관적 판정이라 하더라도 19세기의 현시점에서 양국을 비교하여 본 역사적인 기록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할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4) 인간적인 형벌제도
한국인들이 형벌제도를 어떻게 운영해 왔는가를 보면 인간적인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대단히 잔인하여져서 온갖 고문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많이 볼 수 있지만, 17세기의 서양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형벌제도는 서양보다 훨씬 온화하고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
레지스 신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장 혐오해야 할 범죄도 그들 사이에서는 대단히 온화한 방법으로 처형된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부모를 모욕할 것 같으면 그 죄는 죽음에 해당하며 참수를 당한다. 가장 낮은 정도의 범죄는 태형으로 처벌된다. 필경 사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범죄자일지라도 근처에 있는 섬으로 귀양을 가는 것을 바랄 수 있다.”
레지스 신부의 눈에 비친 것은 죄인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되 온화한 방법으로, 즉 되도록 사형을 피하는 방법으로 처벌된다는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보면 서양이나 중국에 비해서 생명에 대한 애착이 강했으며 형벌제도가 자비스러운 것으로 되었던 것 같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유교사상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부모를 거슬리는 불경죄는 서양에서 그 비교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극형에 처했다는 것이다. 즉, ‘관계’의 신성성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던 시절에 부모와 자식의 인륜 관계를 무너뜨리는 죄를 가장 무겁게 다스린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서 가장 엄격한 제도인 형벌제도를 매우 인간적으로 운영했다는 외국인의 관찰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오랜 역사 동안 인간중심주의의 뿌리깊은 의식의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