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숭배는 특정한 수목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숭배하는 신앙 행위이다. 우리나라 수목 신앙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당산나무 신앙이다. 우리의 고대인들은 높은 산을 하늘과의 교섭처 곧 성스러운 영역으로 보았다. 이것이 발전하여 높은 산에 천신이 내려오듯이 인위적으로 만든 산인 ‘돌무더기·신수(神樹)’에도 천신이 깃든다고 믿었다. 돌무더기를 만들고 신수를 정하는 것은 천신이 거기 계신다고 믿는 데서 온 신앙 형태이다. 이렇게 산신은 호국신 또는 마을의 수호신 곧 동신(洞神)·당신(堂神)이 되었다.
넓은 의미로는 자연숭배 · 식물숭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 수목신앙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연원이 오래이며 광범위한 분포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당나무 신앙이다. 흔히 서낭 또는 성황(城隍) 신앙이라고도 불린다.
서낭당은 대개 동구(洞口) 고갯마루에 주로 동남방쪽에 위치하며 오래된 나무 아래 당집을 짓거나 돌무더기를 쌓아놓아 지나는 사람들이 절하고 가는 것이며, 또는 거기에 실오라기와 헝겊오라기 · 종이오라기 · 머리카락 등을 거는 풍속이 있다.
우리 나라의 서낭신앙은 그 형태가 지방마다 다양하나 공통적인 형태는 종교생활의 가장 고대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누석단(累石壇) · 신수(神樹) · 당집을 그 성역 · 신림(神林), 또는 제단으로 삼고 있다는 데서 일치한다.
이들 누석단 · 신수 · 당집은 우리 나라 남북전역에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러한 누석 · 신수의 형태가 완전히 소멸된 지방이 있다 할지라도 어느 지방 어느 마을에고 당산 · 당뫼 · 당골 · 당고개 · 당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지 않은 마을이 거의 없을 만큼 이 신앙은 아득한 상고 때부터 전승된 뿌리깊은 신앙내용을 이루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보여지는 신앙의 기본형태인 누석단과 신수는 외형적으로 원시형태 그대로 남아 있고, 그것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만주 · 몽고 · 시베리아의 여러 종족, 이른바 샤머니즘 문화권에 공통으로 존재하고 있어, 이 지역문화의 횡적 유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원류로서 원시 이래부터 고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동일신앙의 종적유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골디(Goldi)의 신간(神竿) · 조간(鳥竿) · 목우(木偶)의 결합, 오로치(Oroches)족 및 오스티야크(Ostiak)족의 조간과 목우의 결합, 몽고의 돌무더기[石磧] · 신간 · 조간 등의 복합형식은 한국의 돌무더기 · 조간 · 목우의 결합과 그 장소 · 형식 · 기능에 있어서 흡사함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누석단 · 신수 · 신간 · 조간 · 목우는 마한(馬韓)의 소도(蘇塗)와도 통하는 신앙형태이며, 이보다도 더 오래인 상고의 유속으로 전해져온 단군신화(檀君神話)에 이미 그 신앙적 바탕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소도 혹은 솟대는 장간(長竿) 윗부분에 새모양의 목물(木物)을 붙인 것으로 보통은 장주(長柱)와 한 곳에 세우는 것인데, 현재는 그 실물이 거의 없어지고 말았지만 『삼국지(三國志)』 · 『후한서(後漢書)』 등 중국측 문헌에 소도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원시시대부터 내려오던 풍속임을 알 수 있다.
단군신화에 관한 해석에는 이설이 많으나 신단수는 고대문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천신이 내리기에 신성한 나무였다는 것에 일치하며, 우리 민속에서 ‘신이 내린다.’고 할 때에 그 내림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회학적으로 이 신화에 표상된 내용을 살피면 원시시대의 추장이 제천행사 뒤에 추대되었다는 것과 그 제천행사 자리가 신단수 아래였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누석단 · 신수는 동제의 제단이요, 5월과 10월의 ‘풋굿’ 또는 호미씻이 잔치[洗鋤宴] 끝에 동네의 불효자를 다스리는 마을회의가 바로 거기서 이루어졌던 점으로 보아 고대 재판의 잔영으로 남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목신앙의 기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대인의 종교체험에서 나무는 하나의 힘을 표상하는 존재로 직관되었고, 자연과 상징을 분리할 수 없었던 고대인의 심성에서 나무는 우주론적인 연관에 의하며 직관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서낭당의 돌무더기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풍습은 후대에 추가된 모습이요, 원래는 돌을 얹고 절을 하는 것이 신앙의식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또 악령에 대한 두려움이 발로된 민간신앙 의식이 서낭신앙에 들어오기도 했는데, 그것도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여겨진다. 물에 빠져 죽은 귀신,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귀신, 아기 낳다 죽은 귀신, 처녀로 죽은 귀신 등 원통하게 죽은 원귀(寃鬼)들이 서낭신이 되는 경우가 그러한 예이다.
우리 나라에서 보여지는 ‘누석단 · 신수 · 당집’의 형태로 나타나는 신앙대상은 곧 천신 · 산신(山神) · 동신이다. 우리 나라 민간신앙에서 보여지는 이 세 가지는 완전히 동격이다. 이 신앙의 가장 대표적인 원형이 단군신화에 나타나 있다. 단군은 천제인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웅녀(熊女)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니 천손(天孫)이요, 따라서 천신숭배라 할 수 있고, 그 단군이 군장이 되어 다스리다가 나중에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했으니 산신숭배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천신이 산신과 통하는 관념으로서,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과 인간의 교섭처로서 높은 산을 숭배하였고, 또 우수한 통치자 · 장수는 산신이 되어 나라와 부락의 수호신이 된다고 믿었다. 높은 산이 세계수(世界樹)처럼 세계의 가운데 자리잡아 천상계와 지상계를 이어주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것은 세계산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의 산신은 호국신 또는 마을의 수호신 곧 동신(洞神) · 당신(堂神)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인들은 높은 산을 하늘과의 교섭처 곧 성스러운 영역으로 보고 이주할 때마다 가장 높은 봉우리를 골라 이를 ᄇᆞᆰ뫼[白山]라 불러 숭앙하고, 부락마다 작은 신산(당산)과 신단을 쌓고 제천하였다. 최남선(崔南善)에 의하면, 단군은 이 ᄇᆞᆰ뫼에 제(祭)지내는 단군, 천군이란 이름의 제천자(祭天者)였다고 한다.
어쨌든 돌무더기를 만들고 신수를 정하는 것은 천신이 거기 계신다고 믿는 데서 온 신앙형태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높은 산에 천신이 내려오듯이 인위적으로 만든 산인 ‘돌무더기 · 신수’에도 천신이 깃든다고 믿고, 이것이 집집마다 설단(設壇), 입목(立木)하는 가신(家神)으로 분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무격(巫覡)의 ‘신장대’도 이와 공통된 신앙형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누석 · 신수 · 당집 신앙의 모티브는 천신숭배로서 이것이 산신 · 부락신 · 가신으로까지 발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수목숭배는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보여지는 수목신앙과 공통적인 일치를 보이고 있지만 실상 그 밖의 광범위한 지역에서도 일치를 보이고 있다. 수목숭배가 지역과 시대의 상위에 따라 여러 변형이 있음도 사실이다. 어떤 형태는 우리 나라에서처럼 ‘돌 · 나무 · 제단’의 형태를 집요하게 지니고 전수되는가 하면 어떤 형태는 우주상을 계시하는 나무로서 두드러진 특색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떤 것은 세계의 중심, 우주를 떠받치는 나무라는 특색을 지니고, 어떤 것은 생명과 무한한 풍요, 절대적 실재의 상징으로서의 나무라는 특색을 띠기도 한다. 그러나 거의 무한하다고 할 만큼 수목을 통한 종교적 의미가 풍부하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유로 인간은 수목을 통하여 종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왔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수목신앙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름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훨씬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즉, 수목신앙은 그 단순한 양태에 있어서도 식물이나 나무에만 집중된 신앙은 존재하기 어렵고, 수목신앙은 실제로는 계절의 의례로서 훨씬 더 넓은 생물우주적(bio-cosmic)인 생명의 전체에 관계하는 훨씬 복잡한 드라마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수목숭배라 하더라도 때로는 그 식물적 요소가 지모신(地母神) · 조상숭배 · 태양 · 신년 등에 관련하는 종교적 요소와 구별하기 어려운 때가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엘리아드는 이러한 관점에서 수목의 ‘상징’을 사용하고 수목의 표시(sign)를 찬양하는 것은 생명을 그 모든 양태의 전체로서 ‘의미있게’ 하고, 자연은 지칠 줄 모르는 생산적인 활동으로서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누석 · 신수 · 당집의 의례형태는 계절의 도래나 우주의 변화를 의미있게 하고 새로운 창조의 상징으로 역할해 온 한국인의 가장 오랜 신앙의 뿌리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