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는 천도와 대비해 인간의 존엄성을 인종, 국가, 종교 등의 차이를 초월하는 최고 가치로 보고 그 가치를 실현하려는 유교 교리이다. 영어 ‘humanitas’로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본주의, 인도주의, 인류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서양에서는 종교의 신 중심주의로부터는 인간 자신의 기본적 인권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주의가 나타났다. 동양에서는 유교와 도교에서, 인간을 위한 도(道) 혹은 인륜을 강조해 왔다. 한국 사상은 마음이 중심이고 이 마음을 통해서만 모든 이질적인 이념이나 사상들이 하나로 수렴되고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서양적 개념으로는 ‘humanitas’가 있는데 인문주의 · 인간주의 · 인본주의 · 인도주의 · 인류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서양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세기 이래의 크리스트교 문화 밑에서 자연적인 인간성의 회복 운동으로 나타난 것을 르네상스 휴머니즘(人文主義)이라고 하는데, 종교와 반드시 적대적인 관계에 있지는 않았다. 16세기 종교 개혁 시대에는 인간의 원죄설을 강조하는 개신교와 초월적 · 피안적인 경향이 강한 가톨릭교 및 인문주의자들이 대립하였다.
17, 18세기의 시민혁명시대에 이르러 인도주의는 합리성을 강조하는 계몽사상이 되어 발달하게 되었다. 19세기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하에서 또다시 인간성을 상실하는 모순을 드러낸 시대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나치스에 대한 인간성 옹호라는 면으로 인도주의가 나타났다.
서양의 인도주의는 종교의 신중심주의(Theozentrismus)로부터는 인간 자신의 기본적 인권을 강조하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zentrismus)가 나타났고, 반인간적인 정치적 · 사회적 제도나 경향에 대해서는 인간성 옹호라는 면으로 나타났다.
동양에서는 유교와 도교에서,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인간을 위한 도(道) 혹은 인륜을 강조해 왔다. 도교에서는 인도와 천도를 대칭적으로 이해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인도주의 전통이 풍부하게 전해 오고 있다.
(1) 동양의 인도주의
동양의 인도주의도 사상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첫째로, ‘인도(人道)’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사람을 위한 도’라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주역』에서는 “인도라는 말은 인(仁)과 의(義)를 가리킨다(立人之道 曰仁曰義).”고 하였는데, 인과 의가 두 개의 항이 아니라 의는 인을 인답게 드러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동양에서 인도의 핵심은 역시 인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공자(孔子)는 인을 사랑[愛]이라고 보았으며 인격 가운데에서도 정(情)의 측면을 특히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정(主情)의 측면을 강조하는 면에서는 예수의 사랑이나 석가의 자비도 마찬가지지만, 공자의 사상 가운데에서는 크리스트교나 불교와 같이 신과 인간의 관계가 중요시되지 않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중요시되고 있는 점에서 인의 중심 사상을 볼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른바 친밀함과 소원함의 구별이 있다.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 방식으로 유교가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는 유교의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성인의 마음 속에 구비되어 있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송나라의 주돈이(周敦頤)는 천도를 구비한 성인의 마음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덕목이 인도인 인의예지라고 보고, 군자는 그것을 닦아 길하고 소인은 그것을 거역해 흉하다고 말하고 있다. 인도는 사람을 위한 도로서 전체적으로 천도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둘째로, 인도는 사람을 위한 도지만 그것이 강조되어 인륜 그 자체를 인도라고 보는 경향도 있다. 인도란 인간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일용지간의 인륜을 말하고, 인도는 본래 성(性)에서 나오고, 성은 본래 천(天)에서 나온다고 해 천과 인을 연결짓기도 한다.
인륜이란 천도가 인간 사회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륜은 어떤 개인에 의해 개폐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임의로 추가될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인도가 성스러운 면을 지닌 것으로까지 승화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서』 예악지(禮樂志)에 보면 “천지의 상을 본떠서 예악을 정해 신명에 통하게 하고 인륜을 세워 성정을 바로잡아 만사를 맞게 한다(象天地而制禮樂 所以通神明 立人倫 正情性 節萬事者也).”고 하였다. 인간 사회의 규범인 예악이나 인륜이 천도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 흔하진 않지만 인리(人理)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자연에 일정한 법칙이 있어 천도를 말하는 것처럼 인간 사회 안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인리라고 한다.
이 인리는 인사(人事)나 인심(人心)을 말하지만,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서 “천하의 상법(常法)이 있는 것처럼 인간 세상에서 인간이 얻어 가진 것을 인리라 한다(天下豈有常法哉 當於世事 得於人理).”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천도와 인도를 서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볼 수 있다.
마침내 인간 속의 인리를 경(敬)에 의해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경이란 종교적 감정을 가진 마음의 상태고 천도에 대한 마음의 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째로, 노장 사상에서도 인도는 천도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고 성인만이 천도를 몸에 익혀 능히 인도로써 천도를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노자(老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천도는 마치 활을 벌리는 것 같아 높은 것은 눌리고 낮은 것은 쳐들고 남는 것은 덜고 모자라는 것은 보태느니라. 천도는 덜함이 있으면 남음으로써 부족함을 보충하지만 인도는 그렇지 않으니 모자라는 것을 짐짓 덜어 남는 편을 받드나니 그 누가 남음이 있음으로써 천하를 받들겠느냐. 이는 오로지 도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느니라.”(道德經 제77장)
장자(莊子)도 천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천도가 아니라 천도를 체득해 나타나는 인도였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2) 한국인의 인도주의
우리 겨레는 고대로부터 사람과 하늘이 기본적으로 뿌리가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단군신화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들은 천지의 결합으로 인간이 탄생되었다고 말하고, 인간은 천지의 중(中)으로서 특히 사람의 마음이 상하로 천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의 신명(神明)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고 그것이 순의중정(純懿中正)했을 때 그 밝은 덕은 천지와 합한다고 말하는 대부분 신흥 종교들의 사상도 이러한 예로부터의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천지의 중심이라고 하는 사상은 한국 고대 종교 사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桓雄)은 ‘탐구인세(貪求人世)’하고 웅(熊)은 ‘원화위인(願化爲人)’해 천(天)과 지(地)가 모두 인(人)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인상화(神人相和)의 이상을 가지고 있어 천지의 중으로 인간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여러 왕들에게도 적용됨은 물론 신라 화랑의 ‘영육쌍전(靈肉雙全)’의 모습도 이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에는 천인합일 혹은 신인상화의 사상을 현실 생활에서 구현하는 각종 의례들도 많이 있다. 현실 생활에서 춤이나 노래를 통한 엑스터시(ecstasy)의 경험이 가장 대표적이다.
모든 사상들을 마음 속에서 하나로 꿰려고 하는 것은 고대 사상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에서 원효(元曉)와 같은 일심(一心)의 철학이 구현되었다.
천지의 중으로 인간이 강조되고 인간의 중으로 마음이 강조되는 사상, 즉 천지음양의 중화작용이 진리의 극치임을 나타내는 입장은 성(聖)과 속(俗)을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화엄도리를 대중 속에서 생활화시키려고 한 원효의 사상이나,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학적인 기(氣)가 묘합해 일원화한 이기지묘(理氣之妙)의 철학을 전개한 이이(李珥)에서도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사상은 마음이 중심이고 이 마음을 통해서만 모든 이질적인 이념이나 사상들이 하나로 수렴되고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국의 인도주의 정신은 이처럼 종교적인 데까지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마음이 중요시되고 마음이 통하는 정을 매우 강조해 왔다는 면에서 정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