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은 한 마음, 일치된 마음, 동일한 마음, 온 마음, 산란하지 않은 마음, 한 사람의 마음,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계, 곧 진여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불교철학적 의미에서 일심이 부각된 것은 주1 출현 이후라고 생각되지만, 기신론과 크게 결부되지 않는 천태지의의 철학에서도 일심을 강조한다.
인도 불교에서 일심의 의미있는 예는 『중아함경』과 『태자서응본기경』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중아함경』에서는 수행자가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주2하면 일심이 얻는다고 하는 붓다의 말을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행에 의해서 일심을 얻는다는 것은 결과적 일심이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수행의 경지가 높았을 때의 산란하지 않은 일심임을 알 수 있다. 『태자서응본기경』에서는 붓다가 태자 시절 북문에 나갔을 때 사문을 만났다. 사문에 대해 묻자 시자는 말하길, 사문은 집과 처자, 집착을 버리고 감정을 단절하고 계를 지켜서 무위의 경지가 되면 그 도는 청정하게 되는데, 그럼으로써 일심을 얻으면 온갖 사법이 멸한다고 한다. 즉 여기서도 결과적으로 얻는 경지를 일심으로 칭함을 알 수 있다. 이 문구는 『수행본기경』에도 나온다. 이후 동아시아 불교에서 천태지의의 주3, 『법계차제초문』, 주4의 주5, 연수의 『종경록』 등에서 이 문장을 그대로 차용한다. 천태지의는 『마하지관』에서 일심을 얻으면 모든 삿된 것이 사라져서 일체의 악을 대치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의 일심은 천태지의의 『법계차제초문』에 따르면 청정한 일심이다. 송의 연수는 『종경록』에서 이때가 심무소득의 경지임을 『태자서응본기경』의 이 문구를 들어 설명한다.
그런데 일심이 원인으로서 설명될 때가 있다. 60경권 『화엄경』과 『십지경론』의 경문에는 세계는 허망하며[三界虛妄] 단지 [일]심이 만들어냈을 뿐[唯一心作]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한편, 이 구는 인도 유식학파에서 자주 유식의 논증에 이용된다. 예를 들어 주6에서는 삼계는 표상 뿐이라고 하며, 외계의 대상을 부정할 때 유심, 혹은 유식을 활용한다. 이에 대해서 주7에서는 십지경 가운데 유심이 설해지는 것은 행위 주체와 향수 주체를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입장을 표명한다. 즉 외적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문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심 또는 심이 진심인가 망심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60 『화엄경』의 이 부분을 거듭 밝히는 게송(偈頌)의 경문에서는 삼계가 단지 주8으로부터 존재함을 잘 알고, 세계의 모든 연기법이 일심 가운데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즉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심은 즉 탐심이 되는 것이다. 주9의 주10에서는 세계가 주11이 만들어낸다는 해석을 소개한다. 그러나 유심, 일심의 이해는 반드시 탐심으로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대승의장』의 다른 장에서는 이 일심을 『십지경론』의 주12은 진심으로 보았다고 해석한다. 이미 『유식이십론』의 이역인 주13에는 일심을 상주불변의 자성청정심으로 보고 있어서,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해왔던 것에 유래할 것이다.
천태지의는 일심삼관을 주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심에 공 · 가 · 중의 삼관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일심은 일념과도 동의어로 이해되며, 일념삼천의 교리로 확대된다. 또한 이 일심은 지극한 마음으로도 이해된다. 그런데 이 일심이 망심인가 진심인가에 대한 해석은 천태학파 내에서도 망심임을 주장하는 학파와 진심임을 주장하는 학파로 나뉠 정도 해석하기 곤란한 주제이기도 하다. 일심에 대한 해석은 『기신론』의 출현에 의해서 혁신적으로 바뀌게 된다. 『기신론』에서 일심법은 진여문과 생멸문을 다 포괄한다. 진여문은 세속을 벗어난 존재세계이고 생멸문은 우리가 사는 세속의 존재세계를 의미한다. 일심은 두 가지 세계를 다 포함하여 설명되기 때문에 이미 진심과 망심을 다 포함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혜원의 저술로 전승되는 『대승기신론의소』에서는 일심으로 만든 의미에 대해서, 가까운 의미에서 보자면 망심을 본체로 하지만, 먼 의미에서는 진식, 즉 진심을 본체로 한다고 해석한다. 식으로서는 제8식이 망심이고, 제9식이 진심에 해당한다. 원효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법장의 『기신론』 해석은 동아시아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법장은 삼계는 오직 일심 뿐이라는 문구에 대해서 『십지경론』에서는 제일의제로 정의한다고 하고, 『기신론』에서는 네 가지 모습이 평등한 동일각이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즉 네 가지 모습은 나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생주이멸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조차 일심의 한 측면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법장은 일심을 ‘일여래장심’, ‘진여’ 등으로 정의한다. 특히, 일심인 일여래장심의 본체에 의거하여 두 가지 문으로 나누는데, 양상이 끊어진 의미가 진여문이고, 일심이 조건에 따라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뜻이 생멸문이라고 정의한다. 이와같은 일심의 해석은 삼계유심 해석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효의 일심 이해는 『기신론』과 주14 주석서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다른 해석가에 비해 일심이라는 용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우선 삼계의 모든 법이 오직 마음의 지은 바라는 구에 대해서는 원효는 유심의 심과 일심을 동의어로 본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모든 존재들은 마음으로부터 망념이 일어나 생긴 것이니, 모든 법은 없는 것도 아니면서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허망하니 일체의 존재는 있는 것이 아니면서, 그 마음으로 일체경계를 나타내니 일체경계는 없는 것이 아니다. 원효의 서술대로라면 삼계를 지어내는 마음은 망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심은 본래 진여문과 생멸문을 다 갖추고 있다. 때문에 삼계유심의 일심을 허망 자체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신론별기』 첫부분에서는 일심에서 이문을 열어 모든 경전의 핵심을 하나로 꿰었다고 선언할 만큼 모든 것이 일심에서 출발했음을 강조한다. 일심으로부터 출발했으니 한량없는 뜻이 결국 일심과 동일하다고 한다. 또한 일심으로부터 열었으니 열고 닫는 뜻이 자유롭고, 모든 것이 본래 일심 안에 있으니 세워도 세우는 것이 특별히 없고, 깨뜨려도 특별히 깨뜨리는 것이 없게 된다는 논리를 펼친다.
『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에 나타난 원효의 일심 의미는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일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이와 같은 정의는 『기신론』을 접하면 너무 당연한 듯하지만, ‘일심이문’이라는 술어는 원효의 독창적 조어이다. 원효에게 일심은 적멸한 것이고, 일심은 주15이다. 이것은 『능가경』의 취지를 원효가 해석한 것이다. 이 가운데 적멸한 일심은 심진여문, 즉 마음의 진여적 측면을 드러낸 것이고, 여래장으로서의 일심은 심생멸문, 즉 마음이 생멸하는 측면을 드래낸 것이라고 원효는 설명한다. 둘째, 일심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일체 경계는 본래가 일심이며, 사유의 경계를 벗어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간적 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일심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일심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일심은 공의 이치와 동일하지만, 공외에 일실이 없기 때문이다. 공리와 동일하니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실이니 없는 것이 아니게 된다. 넷째, 비록 일심에는 분별이 없지만, 조건에 따라 적멸, 또는 주16하므로 이 둘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것이 된다. 다섯째, 일심은 무명을 조건으로 여러 마음이 된다. 그러나 그 때에도 일심은 항상 둘이 아니기 때문에 다심에서 일심이라는 근원으로 돌아오게 한다. 여섯째, 일심은 붓다의 경지로 네 가지 지혜로 나타나고, 일심의 체는 다섯 가지 모양을 갖고 있다. 네 가지 지혜는 모든 것을 두루두루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여주는 큰 거울 같은 지혜인 대원경지(大圓鏡智), 모든 것을 똑같이 평등하다 보는 지혜인 평등성지(平等性智), 모든 것을 미세하게 다 오묘하게 관찰하는 지혜인 묘관찰지(妙觀察智), 될 것을 또 되는 것을 이루고야 마는 지혜인 성소작지(成所作智)이다. 다섯 가지 모양은 첫째, 취하는 대상의 차별의 모습으로부터 멀리함, 둘째, 취하는 주체의 분별하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남, 셋째, 과거 · 현재 · 미래의 세계에 두루하여 평등하지 않음이 없음, 넷째, 허공세계와 같아서 두루하지 않은 바가 없음, 다섯째, 있다 없다, 같다 다르다 등의 이분법적 사유에 떨어지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작용을 초월하고, 언어의 길을 벗어나는데, 일심은 셀 수 없는 주17이 있으므로 이 다섯 가지가 모습이 있는데 이것은 일심의 체와 상응하여 존재하는 모습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