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1월 12일에 일민주의 구현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우고 결성되어 이듬해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3석을 차지하였다.
일민주의는 ‘한 핏줄, 한 운명’의 민족집단을 표상한 이승만(李承晩)의 통치철학으로서 국민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는데, 그 이론적 구성은 안호상(安浩相)의 ‘민주적 민족론=민족주체성’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최고위원에 윤치영(尹致暎), 고문에 이규갑(李奎甲)·이범승(李範昇)·임영신(任永信)이 추대되었으며, 당시 의원내각제 개헌을 하려고 하는 민주국민당(民主國民黨)에 대항, 원내투쟁을 전개하는 등 한때 원내 제1당이 되어 원내정치를 주도하였다.
그 뒤 부산피난국회가 원내교섭단체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소멸되었으며, 정당과는 별도로 일민주의를 보급하려 하였던 일민주의보급회 총본부의 전국조직화도 좌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