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儀仗)의 한가지로 산(傘)이나 개(蓋)라고도 쓴다. 계급에 따라 그 색과 형태가 다르다. 삼국시대 전에도 일산은 있었을 것이나 삼국시대 고분벽화에 처음 보인다. 수산리고분벽화를 보면 주인공과 귀부인의 뒤를 시녀가 일산을 들고 따라가고 있다.
이 일산은 자루가 위쪽에서 꺾인 곡산(曲傘)으로 사람의 머리가 일산의 중앙부에 오도록 씌울 수 있는 것이다. 통구12호분의 여인행렬도에는 앞의 여인이 혼자서 일산을 들고 행진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덕흥리고분의 전실 동측 천장벽화에는 남자가 일산을 들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일산의 중앙 꼭대기와 각 귀퉁이에 짙은 색칠이 되어 있다.
이상의 일산은 현대의 우산과 같이 장식이 없고 간단하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일산을 썼을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기록이나 그림이 없다. ≪고려사≫에 기록된 의종 때에 상정한 대례·대조회 때의 의장을 보면 대관전의 조회·절일·정월·동지·가례에는 전정(殿庭)에서 의식을 치르는 데 대산과 양산이 쓰였다.
또 중동팔관회(仲冬八關會) 노부의장(鹵簿儀仗)에는, “4월부터 8월까지 관리들이 사모만을 쓰면 열기가 목에 닿아 고생이 심하므로 양 부는 중첨청색(重詹靑色) 개를 쓴다. 6부판서·대언반주(代言班主)·통헌산기(通憲散騎) 이상은 단첨청색 개를 쓰고, 대성(臺省)은 평첨조개를 쓰고, 3품은 원선(圓扇)을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대산·양산·협산·개는 일산을 말하며 계급에 따라 색과 형태가 달랐다. 고려시대의 일산은 그림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의 노부의식은 ≪국조오례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의장반차도 儀仗班次圖>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보이는 일산으로는 홍개·청개·황개가 있다.
대한제국 <동가도 動駕圖>에도 청산·홍산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일산의 형태는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부분과 자루부분으로 되어 있다. 햇볕을 가리는 부분은 둥근형·모난형·종형이 있으며 첨이 없는 것, 한 개인 것, 두 개인 것, 세 개인 것이 있다. 자루는 길며 곧은 것과 구부러진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