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업 설화

  • 문학
  • 작품
  • 조선 후기
조선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에 얽힌 설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서대석 (서울대학교, 국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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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에 얽힌 설화.

내용

임경업은 병자호란을 전후로 활약하였던 인물인데, 그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 「임장군전」에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소설이나 전기에 없는 임경업의 설화가 문헌이나 구비로 전하여지고 있다.

『동야휘집(東野彙輯)』에는 「대녹림논검결의(對綠林論劍結義)」라는 제목으로 임경업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임경업이 어느날 사냥을 나가서 태백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나무꾼을 만났는데, 그 나무꾼은 검술이 신통하여 자기 여자와 간통한 세 남자를 죽이는 장면을 임경업에게 보여준 뒤 뒷날에 쓸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 검술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청구야담』 등 다른 문헌설화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구비로 전승되는 임경업의 이야기는 서해 연평도의 임경업장군 사당과 관련된 것이다. 임경업은 호국의 요청으로 한나라의 수군대장이 되어 명나라를 치기 위하여 서해를 건넜고, 다시 청나라로 잡혀가다가 도망하여 서해를 건너 명나라로 망명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연평도 부근에 머물게 되었는데, 바다 가운데 식수가 없어 군사들이 동요하자 한군데 닻을 내리고 바닷물을 퍼서 마시게 하였는데 이 물이 바로 담수였다는 것이다. 또한, 반찬이 떨어지자 근처의 가시나무를 베어다가 바다에 꽂아 놓았는데 조기떼가 가시에 많이 걸려 반찬으로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밖에 임경업장군 사당에 왜병들이 들어갔다가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는 이야기와 임경업이 호국공주에게 관상을 보인 이야기, 병자호란 때 호국의 항복을 받으려 하였으나 국왕의 항서 때문에 참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 - 『동야휘집(東野彙輯)』

  • -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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