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재숙(載叔)
  • 청구(淸癯), 청요(淸曜)
  • 시호충익(忠翼)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자호란|유탁의 모반사건
  • 본관나주(羅州)
  • 사망 연도1652년(효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도승지|이조판서
  • 출생 연도1596년(선조 2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영정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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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임붕(林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복(林復)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임서(林㥠)이며, 어머니는 구성부사 임식(林植)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6년(광해군 8) 생원이 되고,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병자호란 때 사헌부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성립된 뒤 진휼어사(賑恤御史)로 호남지방에 내려갔다.

1639년 좌승지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1644년 경상도관찰사로 서원이 사당화하는 폐습을 상소하였다. 1646년 충청도관찰사로 유탁(柳濯)의 모반사건을 처결, 그 공으로 품계가 오르고 토지를 하사받았다.

그 뒤 형조 · 예조 · 병조 · 이조의 참판과 대사간 · 도승지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1650년(효종 1) 다시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였다. 1652년 청나라 사신의 반송사(伴送使)로 다녀오다가 가산에서 죽었다.

천품이 영오(穎悟: 밝고 명석함)하고 풍의(風儀)가 활달하였으며, 희노(喜怒)를 표정에 나타내지 않고 호오(好惡)에 치우침이 없었다. 식견이 넓고 깊었으며 전략에도 밝았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약천집(藥泉集)』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서계집(西溪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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