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9년 좌승지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1644년 경상도관찰사로 서원이 사당화하는 폐습을 상소하였다. 1646년 충청도관찰사로 유탁(柳濯)의 모반사건을 처결, 그 공으로 품계가 오르고 토지를 하사받았다.
그 뒤 형조 · 예조 · 병조 · 이조의 참판과 대사간 · 도승지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1650년(효종 1) 다시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였다. 1652년 청나라 사신의 반송사(伴送使)로 다녀오다가 가산에서 죽었다.
천품이 영오(穎悟: 밝고 명석함)하고 풍의(風儀)가 활달하였으며, 희노(喜怒)를 표정에 나타내지 않고 호오(好惡)에 치우침이 없었다. 식견이 넓고 깊었으며 전략에도 밝았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약천집(藥泉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서계집(西溪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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