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에 있는 자서(自敍)가 1847년(헌종 13)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 저자 생존시 직접 편집해놓은 것을 후손이 필사한 듯하다.
8권 2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시 150수, 권2·3에 서(書) 160여 편, 권4에 행장 5편, 묘지 11편, 권5에 비명 3편, 권6에 묘갈명 11편, 묘표 2편, 유사 2편, 권7에 서(序) 7편, 발(跋) 6편, 제문 24편, 권8에 설(說) 2편, 변(辨) 12편, 잡지(雜識) 29편, 잡록 5편, 가간잡록(家間雜錄)·동정의(同鼎儀)·유소록(遊小錄)·임술기행(壬戌紀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유람류(遊覽類)·상영류(觴咏類)·송별류(送別類)·기증류(寄贈類)·견흥류(遣興類)·감흥류(感興類)·견민류(遣悶類)·애만류(哀挽類)·감회류(感懷類)·영물류(咏物類)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로 산과 강에서 유유자적하며 음주를 즐기고 시를 읊는 사이에 흥취를 발산한 것이 많다. 감흥류나 견민류에는 민중들의 고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저자의 강한 사회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정원용(鄭元容)은 이에 대해 ‘협가풍(俠歌風)’이 있다고 하였다. 『대동시선(大東詩選)』에 수록된 30수도 이와 같은 성격의 작품들이다.
서(書)는 강필효(姜必孝)·유희(柳僖)·성근묵(成近默)·홍석주(洪奭周)·정원용·강집(姜鏶) 등과 의례 및 학문에 대하여 강론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서(序)의 「가례비요서(嘉禮備要序)」·「상례집홀서(喪禮輯笏序)」·「석담작해서(石潭酌海序)」 등은 자신의 저서에 붙인 서문으로, 예학(禮學)에 대한 관심과 이이(李珥)의 학문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 「이기설(理氣說)」과 「육합설(六合說)」도 성리학에 대한 관심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저자는 관직을 지향하지 않고 국내의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학문적 사색과 현실 투시를 통해 실천성이 강조되는 예학 연구와 사회 비판적인 시편들을 창작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19세기 초엽 한국 예학의 동향과 한국 한시사를 정리하는 데에 긴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