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도는 목포항 서북쪽 약 40㎞ 지점에 위치하며 대개 높이 200m 이내의 낮은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곳에서 발견된 선사유적은 고인돌과 조개더미이다.
그 밖에 역사시대의 유물은 백자조각이 조금 있을 뿐 다른 유물은 전혀 없다. 조개더미는 구산리 염동 조개더미와 삼두리 조개더미의 2개소가 있다. 고인돌은 구산리·대기리·탄도리·화산리 등지에 10기 미만이 있다.
구산리 염동 조개더미는 구산리로 들어가는 길목의 민가 뒤터 높이 약 109m의 야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패각층은 표토층(表土層) 아래에 22∼50㎝의 두께를 가진 단일패각층이며, 그 아래에는 황갈색의 암반 및 부식토층이 보인다. 패각의 범위는 남북으로 약 50m 정도이다. 말백합·고둥·토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이 조개더미는 원래 바닷가에 형성되었던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출토유물은 덧띠[粘土帶]가 보이는 민무늬토기조각, 전형적인 민무늬토기 바닥조각·몸통조각[胴部片] 및 문살무늬[格子文]의 김해토기조각 등이 있다. 따라서 이 조개더미는 민무늬토기가 주가 됨을 알 수 있다. 연대는 함께 출토된 덧띠민무늬토기와 김해토기를 기준으로 추정한다면, 대략 서기전 3∼2세기에서 서기전후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삼두리 조개더미는 삼두리의 민가 보리밭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작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조개더미는 일종의 사구(沙丘)를 이룬 바닷가 모래사장에 형성되었다. 패각층은 약 40㎝의 표토층 아래에 형성되어 두께는 깊은 곳이 약 30㎝ 정도이다. 출토되는 조개류는 대합·고둥·토굴 등이며 패각의 범위는 남북 33.5m, 동서 60m로 상당히 넓다.
출토유물은 앞의 구산리 염동 조개더미에서와 같은 전형적인 민무늬토기가 아닌, 김해토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굵은 모래알이 섞인 사질의 민무늬토기조각들이며, 기타 표토층에서는 임진왜란 후의 백자 조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 조개더미는 민무늬토기시대에 속하기는 하지만, 구산리 염동 조개더미보다 연대가 떨어지는 최하한의 민무늬토기시대와 조선 후기 두 차례에 걸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