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골 출신의 각간(角干)으로서 정치적 지위는 대등(大等) 이었다. 진평왕 때에 임종은 자식이 없었으므로 비형랑(鼻荊郎)이 추천한 귀신 길달(吉達)을 왕명에 의하여 양자로 삼았는데, 길달로 하여금 흥륜사(興輪寺) 남쪽에 문루를 짓게 하고 그곳에서 자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이 문을 길달문(吉達門)이라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임종이 가지는 왕실과의 관계로 보아 성은 김씨(金氏)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임종은 진덕여왕 때에 알천(閼川)·술종(述宗)·호림(虎林)·염장(廉長)·유신(庾信)과 더불어 4영지(靈地)의 하나인 남산의 오지암(亏知巖)에 모여 국사를 의논하는 화백회의에 참여하였다.
여기에 모이던 대신들의 사회적 신분은 진골 출신이었으며, 상대등(上大等)인 알천을 의장으로 하는 화백회의에서의 정치적 지위는 대등이었다. 따라서, 임종의 신분과 지위도 진골과 대등일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