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년(충숙왕 7) 국자시(國子試) 시관이 되어 정종보(鄭宗輔) 등을 선발하였다. 1321년 밀직부사를 거쳐 이듬해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어 원나라 황후의 책봉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로 파견되었으나, 파사부(婆娑府)에 이르러 다루가치(達魯花赤)가 역마를 내주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1324년 추성양절공신(推誠亮節功臣)으로서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되었다. 1327년 심양왕 왕고(瀋陽王 王暠)의 일이 수습되면서 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었을 때 보필하였던 신하들의 공을 포상하였는데, 순창군(淳昌君)으로서 2등공신에 봉하여졌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2월 충숙왕이 복위하자 채홍철(蔡洪哲)과 더불어 다시 찬성사(贊成事)가 되었고, 아울러 원(元)나라 전 이문낭중(理問郞中) 장백상(蔣伯祥)과 함께 정동성(征東省)의 업무를 섭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