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이타마중학(埼玉中學)에 유학하고 있던 윤만영(尹晩榮)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다.
1940년 9월 학교 당국이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교칙을 지키고 자숙할 것을 명하자, 이에 따르는 것처럼 하면서 100여명의 유학생 전원이 모여 ‘자숙회’라는 이름의 단체를 조직하였다.
자숙회의 회장에는 고종만(高宗萬), 부회장은 윤만영, 서무계에 황진구(黃鎭球)·김요한(金堯翰) 등을 각각 선출하고, 이 단체를 단순한 유학생친목단체가 아니라 민족운동단체로 발전시켜 한국독립운동의 소지를 마련하는 데 힘쓰기로 하였다.
또한, 이 단체는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정책을 비판하고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 때의 한국인에 대한 대학살을 규탄하면서 항일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일제의 한국인에 대한 황민화정책(皇民化政策)과 천황제를 반대하는 운동을 펴나갔으며, 더욱이 일제의 침략전쟁이 가열화되면서 한국인에 대한 지원병제도가 실시되자 이에 맹렬히 반대하였다.
일제 당국은 자숙회가 민족독립운동단체라고 하여 이에 대한 탄압을 가하여 1941년 7월 23일 자숙회 회원에 대한 체포에 착수, 간부를 포함하여 주동자로 인정되는 회원 6명을 검거하여 그 중 3명을 유예처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