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대기 끝에 삼지창 비슷한 쇠를 박거나 한두 개의 쇠 꼬챙이를 꽂았다. 찌르개살과 작살의 두 종류가 있다. 찌르개살은 날 끝에 미늘(낚시에 붙은 작은 갈고리)이 달리지 않은 것으로 물고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푹 찔러 잡으며, 작살은 날 끝에 미늘이 달렸으며 자루에 노끈을 잡아매고 물고기를 향하여 던져서 잡는다.
이 밖에 미늘은 있으되 손에 쥐고 찔러 잡는 것과 미늘이 없더라도 자루에 노끈을 매고 던지는 것도 작살의 한 가지로 분류한다.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작살인 듯한 그림이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돌과 뼈로 만든 찌르개살과 작살 끝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 가운데 특이한 것은 부산 동삼동의 조개더미에서 나온 흑요석제(黑曜石製) 작살로서, 사다리꼴의 밑변을 톱니처럼 갈아 놓아서 한 번 박히면 빠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 밖에 비슷한 작살이 통영 상노대도(上老大島)의 조개더미에서도 나왔으며, 웅기의 서포항 유적에서는 미늘을 양쪽에 붙인 뼈로 만든 작살도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든 찌르개살이나 작살을 많이 썼으며,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바위그림 가운데 고래에 작살이 꽂혀 있는 것도 보인다. 철기시대로 들어오면서 작살은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경주 안압지 출토유물 중 미늘이 달린 두발작살[二枝槍]과 가운뎃날을 제외한 좌우 양날에 미늘을 붙인 세발작살[三枝槍], 그리고 날이 여섯 개나 달린 여섯발작살[多枝槍]이 나와서 7∼9세기에 신라에서 작살을 널리 쓴 사실을 알려 준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와의 교역품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했던 바다표범은 모두 작살로 잡았을 것이다. 작살의 역사는 꾸준히 이어져서 조선 말기에도 큰 강가에서 세발작살로 연어를 많이 잡았으며, 오늘날에는 냇가나 못 등에서 붕어나 모래무지를 잡으며, 강원도 강릉에서는 장마철에 알을 낳기 위해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도 거둔다. 충청북도에서는 작살의 발수에 따라 세가다리·네가다리·오가다리 등으로 부른다. 가다리는 가랑이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고래를 잡을 때 줄이 달린 작살을 손으로 던졌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이것을 쏘는 포(船首砲)가 발명되었고, 19세기 후반에는 기선에 장치하여 작살을 쏘는 포경포(捕鯨砲)가 등장하면서 고래 잡는 작살은 모두 포로 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돌고래 따위를 잡을 때에는 손으로 던지는 작살을 이용하는데, 강원도지방에서는 돌고래류 뿐 아니라 개복치도 이것으로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