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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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개념
글자 수에 제한이 없는 긴 형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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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글자 수에 제한이 없는 긴 형식의 노래.
내용

조윤제(趙潤濟)는 이것을 다시 각 연(聯)으로 분단할 수 있는 연장체(聯章體) 장가와, 그러한 분단 없이 무한정 연속되는 가사체(歌辭體) 장가로 크게 나누었다.

그리고 전자에 속요(俗謠)와 경기체가를 소속시켜 고려장가라 칭하고 후자에 가사(歌辭)를 소속시켜, 고려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전자가 후자로 발달되어 간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장가라는 용어는 신라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이며, 각 시대마다 그 속성과 원리를 달리하므로, 고려의 속요나 조선의 가사만을 장가라 칭하는 것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특히 시조를 단가라 하는 것이 예사이므로, 시조와 대립되는 형식으로서의 장가는 가사이므로, 가사 장르를 장가라 이칭하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되나, 여러 연이 중첩되어 노래가 계속 길어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려 속요를 장가라 함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에 일반화되지 않고 있다.

또한 속요이든 가사이든 그것을 장가로 부를 경우 긴 노래의 형식이라는 초역사적 의미만을 부여할 수 있을 뿐, 역사적 장르 개념어로서는 그 어느 쪽도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속요나 가사를 장르 개념어로서 장가로 지칭하는 데 동조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장가라는 명칭이 역사적으로 어떤 작품에 쓰여졌으며, 그들 작품의 장르상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개별 작품별로 검토하는 일이 보다 긴요하다.

신라시대의 장가로는 ① <해론가 奚論歌>, ② <실혜가 實兮歌>, ③ <산화가 散花歌>를 들 수 있다. ①은 26대 진평왕 때 백제군을 공략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친 대나마(大奈麻) 해론(奚論)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으로 이 당시 모든 사람들이 불렀다고 하므로 긴 노래 형식의 ‘민요’임을 알 수 있다.

②는 강직한 성품을 가진 실혜(實兮)가 상사인(上舍人)이 되었을 때 함께 일하던 하사인(下舍人) 진제(珍堤)의 참소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궁벽한 시골로 추방되었을 때, 왕에게 이 노래로써 자신의 뜻을 표하였다는 긴 노래 형식의 개인 창작 가요(향가)임을 알 수 있다.

③은 경덕왕 때의 승려 월명사(月明師)가 꽃을 뿌리는 불교 재식(齋式)에서 부른 노래다. <도솔가 兜率歌>와 혼동되기도 하였으나 형식이 긴 노래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노래라고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서 밝힌 바 있다.

고려시대의 장가로는 속요를 제외하고 볼 때 <어부가 漁父歌> 한 편을 들 수 있다. 이 노래는 ≪악장가사≫에 작자 미상으로 전하며, 칠언율의 한시 형태에 우리말로 현토하고 후렴구를 붙여 총 12장(章)으로 이어지는 연장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장가로는 이현보(李賢輔)가 고려의 <어부가>를 새로 개작, 9장으로 완성한 <어부장가 漁父長歌>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가사 작품 중에서 직접 장가라는 명칭이 붙은 작품으로는 백수회(白受繪)가 지은 <재일본장가 在日本長歌> 한 편이 전한다.

이처럼 장가는 독자적 형식이나 양식적 특성을 갖춘 노래가 아니라 각 시대마다 문학사적 환경에 따라서 민요·향가·한시체·가사 등 다양한 장르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고, 작자층도 집단의 공동작으로부터 특정의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詞綱)』(조윤제, 박문출판사, 1973)
집필자
김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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