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장수향교 대성전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읍 장수향교 경내에 있는 조선 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이다. 장수향교는 1407년에 장수읍 선창리 당곡마을에 처음 창건되었다. 보통 평지에 세워진 향교는 앞쪽에 대성전이 있고 뒤에 명륜당이 자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장수향교는 뒤쪽에 대성전이 있다. 장수향교 대성전은 조선 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이다. 숙종 연간에 이건되었지만 2차례 왜란 때도 소실되지 않아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대성전의 지붕부를 받치는 부재 및 건축 수법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향교 경내에 있는 조선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 유교건축.
개설
역사적 변천
1681년(숙종 7)에는 장수향교 터가 가라앉고 비가 새자 유림들이 조정에 이건을 건의하였다. 그 결과 1685년(숙종 11) 3월부터 현 위치에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한 명륜당(明倫堂), 동 · 서재(東西齋) 등의 이건공사를 착수하여 이듬 해 2월에 완료하였다. 1877년(고종 14)과 1935년에 각각 중수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내용
특징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의 단층 맞배집으로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앞 퇴는 개방하고 전면 고주열에 맞춰 문을 달았으며 내부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정면 가운데 칸 두 짝 띠살문을 달았고 협칸에는 외짝문과 띠살창을 달았다. 외관에서 보이는 특징은 귀기둥 옆에 달려 있는 구부러진 부재이다. 이 부재는 다른 건물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수한 부재이다. 맞배지붕의 양쪽 끝 부분이 처지는 것을 구조적으로 보강하면서 지붕부와 축부(軸部)를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고 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정면과 배면의 구조가 서로 다르다. 정면 공포는 기둥 상부에만 포를 짜 올린 2출목(出目) 3익공 형식으로 주심포와 다포의 수법이 혼합되어 있다. 초제공과 2제공은 연꽃을 조각하였고 끝 부분이 위쪽으로 뻗어 올라가는 앙서형(仰舌形)이다. 3제공은 연봉오리를 조각하였으며 끝 부분이 아래쪽을 향하는 수서형(垂舌形)이다. 그러나 배면의 공포는 1출목 2익공 형식으로 정면보다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가구구조(架構構造)는 1고주(高柱) 7량(梁) 구조로서 대들보와 중보, 종보를 사용한 3중량(重樑) 형식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건축문화재 전북편』(홍승재, 기문당, 2005)
- 「장수향교 대성전 실측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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