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일대에서 독립군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22년 4월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흥업단(興業團)·대진단[大震團, 이칭: 태진단(太震團)]·광복단(光復團)·태극단(太極團) 등 5개 단체가 주축이 되어 광정단(匡正團)을 조직할 때 비서로 선임되었다[단장 김호익(金虎翼), 총무 윤덕보(尹德甫)].
광정단은 이후 군사적인 조직과 훈련을 강화하여 장백·안도·무송·임강의 4개현을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1923년 봄에는 중앙총부를 무송현에 두고 별도의 암살단을 임강현에, 참모부를 무송현에 설치하는 한편 각 현에 지단과 지서를 두어 구역내의 독립군·교포들은 물론 여러 독립운동단체들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23년 봄 광정단이 조직을 개편할 때 서무부장이 되었고, 계속하여서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다가 1933년 여름 양세봉(梁世奉)·고이허(高而虛) 등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에 속하여 중국의용군과 연합작전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