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재료에는 종이·탱자·솔방울·광목 따위가 있으며, 물기를 막기 위하여 콩댐으로 마무리하였다. 콩댐은 콩을 물에 불려 간 뒤에 들기름을 섞어 장판한 위에 여러 차례 덧발라서 물기가 스며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기를 키우거나 식사를 하는 등 물기가 떨어지기 쉬운 방에는 거의 반드시 콩댐을 하였는데 자주 걸레질을 할수록 윤이 나서 보기에도 좋다. 장판을 할 때에는 먼저 온돌 표면에 얇은 종이를 바른 다음 조선 종이를 덧바른 위에 기름종이를 발라 마감한다.
장판 가운데에는 질기고 두터운 종이에 기름을 먹여 귀를 맞추어나가며 바르는 각장장판을 으뜸으로 친다. 이것은 초배한 바닥을 사발이나 놋쇠 대접을 엎어서 문질러 고른 다음에 바른다. 또, 이 장판의 이음새나 벽면과 이어진 부분을 얇은 장판지로 발라 마무리짓는 일을 ‘걸레받이’라 이른다.
솔방울장판도 각장장판 못지 않은 고급 장판이다. 겉껍질이 딱딱해지기 전의 자잘한 솔방울을 따서 새벽질한 바닥 위에 깔고 불을 때어 조금씩 말린다. 굴림백토를 만들어 한쪽에 쌓아놓고 방바닥 표면이 될 높이에 따라 눈금을 주어 표시한 뒤에 굴림백토를 받으면서 솔방울을 빽빽하게 세운다.
이 때 솔방울에서 송진이 우러나기 시작한다. 솔방울의 끝을 방바닥 표면 눈금에 맞추어 낫으로 잘라내고 짓누르면서 다시 한번 고르고 굴림백토가 마를 때까지 불을 지핀다.
그 뒤에 솔방울들을 수평이 되도록 가지런히 세운 다음 다시 불을 때면 송진이 우러나오면서 온 방바닥을 덮게 된다. 이것이 송진장판으로, 자주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매끈매끈하게 길이 든다.
우리가 언제부터 장판을 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17세기 중엽에 우리 나라에 흘러 들어온 네덜란드인 하멜(Hamel,H.)이 쓴 ≪조선국기 朝鮮國記≫에 “방바닥이 유지로 덮여 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 이미 널리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세기에 나온 ≪경도잡기 京都雜記≫에도 “방에는 누런 기름종이를 발라서 기름처럼 미끄럽고, 그 위에 수복 무늬를 놓은 용수 돗자리를 펴고 화문 안석을 놓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우리 나라 중부지방의 상류가옥에 관한 것으로서 평안도와 함경도지방에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강원도 산간지방의 농가에서는 근래까지 흙바닥에 자리를 깔고 생활하였으며 형편이 나은 집에서는 자리 위에 볏집과 왕골로 짠 기직을 덧깔고 지냈다. 한편, 함경도 지방의 서민들은 참나무를 얇게 켜서 만든 ‘구름깔개’를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