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장수 김유신 관련 우물.
내용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3년(644)에 김유신은 소판(蘇判)이 되었고, 그 해 9월에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성열성(省熱城) · 동화성(同化城) 등 일곱 성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그 다음해 정월에 돌아왔으나, 아직 왕을 배알하기도 전에 백제의 대군이 신라의 매리포성(買利浦城)을 침공한다는 급보를 받고, 왕은 또 김유신을 상장군으로 삼아 이를 막으라고 명령하였다. 김유신은 왕명을 받고 처자도 만나보지 못한 채 출정하여 백제군을 쳐 이를 패주시키고 2,000명을 베어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그 해 3월에 왕의 귀환하라는 명령이 내렸으나, 김유신이 집으로 가기도 전에 또다시 백제의 군사들이 그 국경에 나와 진둔하고, 장차 군사를 일으켜 신라로 쳐들어오려 한다고 급히 알리자, 왕은 다시 김유신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공은 수고롭겠으나 빨리 나가서 적들이 전비를 갖추기 전에 이를 방비하라.”하므로, 김유신은 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곧 군사를 훈련하고 병기구를 수선한 다음, 서쪽으로 백제를 막으러 나갔다.
이 때에 집사람들은 모두 문밖으로 나와서 장군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런데 김유신은 문 앞을 지나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가다가 50걸음쯤 되는 곳에 이르러서 말을 멈추고, 종자에게 집에 가서 물을 떠오라 명령하여 물을 마셔 보고 말하기를 “우리 집 물맛이 아직도 옛날 그대로구나!” 하고 그냥 길을 떠나니, 이를 보는 모든 군사들이 말하기를 “대장군도 이와 같은데, 우리들이야 어찌 골육의 가족들과 이별함을 한탄하리요.” 하며 싸움터로 나갔다고 한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한국민간전설집』(최상수, 통문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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