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의 편성과 집행의 관리, 조세제도 및 정책의 수립, 국유재산과 정부회계에 관한 사무 등 예산·조세·국고를 비롯한 국가재정을 운영하며,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장단기 정책 수립 및 조정, 화폐·금융·외국환에 대한 정책의 입안과 집행, 물가안정시책과 대외경제정책의 조정을 담당하였다.
1994년 12월 「정부조직법」을 개정, 공포함으로써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재정경제원으로 통폐합하였다. 과거 정부주도하의 성장시대 조직을 과감히 감축, 탈피함으로써 모든 분야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신장시켜 나가고자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었다.
재정경제원의 발족은 지난날 경제정책의 핵심을 이루었던 경제기획 기능과 규제위주의 금융지도 기능변화의 불가피성으로 향후 경제정책 수립에 있어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담당부처의 긴밀한 협조체제가 주요 관건으로 대두됨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수행을 위하여 세출과 세입, 예산과 결산의 통합 운용의 필요성과 자본시장의 개방 및 개발도상국간의 경제협력 등에 대한 대응책과 아울러 전반적인 대외경제정책 수행차원에서 일원화할 필요가 있었다. 조직은 부총리를 겸한 국무위원인 장관과 차관, 별정직인 제1차관보·제2차관보를 두어 장관이 명하는 업무에 관하여 장관과 차관을 보좌하게 하였다.
특히 장관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경제·제정정책에 관하여 관계장관의 의견을 수합·조정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하부조직으로 공보관·감사관·국제협력관·비상계획관·기획관리실·총무과·예산실·세제실·금융정책실·국고국·경제정책국·대외경제국·국민생활국이 설치되어 있었다. 재정경제원의 변천과정을 보면 1948년 대한민국 출범과 함께 기획처가 1실 4국 20개 과로 출범하였다. 1955년 기획처를 폐지하고 부흥부를 신설 2국 1담당관 9개 과를 두었다.
1961년 부흥부를 폐지하고 건설부를 설치 4국 18개 과를 두었다가, 1961년 경제기획원을 신설 4국 19개 과를 둔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부분적으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종래의 금융지도 기능을 담당하던 재무정책국·금융국·증권보험국·국제금 융국 등을 금융정책실로 통합함으로써 거시경제 측면에서의 금융정책 기능을 강화해 나가게 되었고, 경제기획국과 정책조정국을 폐지하고 경제정책국을 신설하여 거시경제정책과 분야별 경제정책 기능을 통할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역자유화의 진전으로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관세업무를 세제실로 통합하고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준비, 남북 경제협력 등 대외경제정책의 조정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경제협력국을 대외경제협력국으로 흡수, 통합하였다. 외청으로 국세청·관세청·조달청·통계청 등의 4개 청이 있었으며, 그 밖에 세무대학·국세심판소가 있었다.
재정경제원이 다른 경제부서에 비해 그 조직과 권한이 너무 비대하다는 여론에 따라 1998년 2월 28일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중복기구를 다른 주무부서에 대폭 이관시키고 그 명칭도 재정경제부로 축소하고 부총리 겸임도 폐지하였다. 그러나 2001년 1월 29일 「정부조직법」을 다시 개정하고 재정경제부장관로 하여금 부총리를 겸임하게 하여 경제분야전반을 책임지게 하였다. →재정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