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성종 때 진사에 급제하여 목종 때 태학박사에 임명되었다. 1007년(목종 10) 탐라(耽羅)에서 해중(海中)에 서산(瑞山)이 솟아나왔다고 보고해왔으므로, 조정에서 전공지를 보내어 알아보게 하니 그 산 밑에까지 가서 모습을 그려 바쳤다.
1012년(현종 3) 5월 형부시랑으로 하절문후사(夏節問候使)가 되어, 거란에 가서 현종이 신병이 있어 친조(親朝)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하였다. 이에 노한 거란 황제가 강동 6주를 취한다는 조서를 내리자 이의 부당함을 주장하여 철회시키고 돌아왔다.
1014년 중추원부사로 이부시랑이 되었다.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성품에 특히 외교문서에 뛰어났다.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에 추증되었다.